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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김진우의 도쿄 리포트

‘자마시 시신 9구 사건’이 드러내보이는 현대 사회의 그늘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자마(座間)시의 한 아파트에서 9구의 시신 일부가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한 지 3주가 지났다. 그 사이 피해자 9명의 신원이 확인되는 등 사건의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이 적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게 되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여성이 대부분이다. 가장 어린 피해자는 15세 여고생으로, 17세 여고생 2명까지 여고생만 3명이다. 19세 대학생과 20대 초·중반 4명 등 5명도 모두 여성이다. 이밖에 실종된 여자친구를 찾으러 나섰던 20대 남성 1명이 살해됐다.
 용의자 시라이시 타카히로(白石隆浩·27)는 사건 현장인 아파트에 입주한 지난 8월 말부터 약 2달 동안 이들 9명을 살해했다고 한다. 그는 사체를 절단해 아이스박스에 나눠 담은 뒤 일부는 밤에 쓰레기로 버렸다.
 그는 피해자들에 대해 “트위터에서 알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관적인 게시물을 트위터에 올린 여성들에게 “함께 죽자”는 메시지를 보내 집으로 불러들였다. 시라이시는 경찰 조사에서 “정말 죽으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저항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을 보면 피해자들은 “죽고 싶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것이 계기가 돼 사건에 휘말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이 자살을 바라다가 화를 자초했다고 간단히 결론지어도 될까.
 마지막으로 희생된 20대 중반 여성은 한부모가정 자녀라고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쳐나온 뒤 생활보호를 받으면서 이 여성을 길렀다. 그 어머니마저 지난 6월 세상을 떠났다. 또다른 피해 여성은 지난 여름 이혼한 뒤 아이를 혼자 길렀다. 이 여성은 마음의 병을 안고서 유흥업소에서 일했다.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게 이번 사건의 배경에 있는 게 아닐까.
 피해 여성들은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소설을 좋아하는 여대생이거나 만화가를 꿈꾼 여고생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실종되기 직전까지 학교에 가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고, 가족과도 접촉하고 있었다. 다만 이들에게는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상대나 장소가 없었다. 주변에서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두려워 인터넷 상에서 괴로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죽고 싶다’고 했지만 실은 누군가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길 바랐을지 모른다. 시라이시는 이런 여성들의 ‘틈’을 파고 들어갔다.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일본 정부가 검토하고 있듯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규제가 능사가 아니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실태를 알아야 한다. 구루메(久留米)대학이 지난해 10~11월 일본 중고생 2만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죽고 싶다고 때때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23.7%였다. 이들이 고민을 털어놓는 상대로 가족에 이어 인터넷이 뒤를 이었다. 친구나 학교보다 인터넷에 의지하는 학생이 적지 않은 것이다.
 비단 일본 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공개한 ‘더 나은 삶의 지수 2017’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통계가 집계된 31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특히 어려울 때 믿을 만한 친구나 친척이 있는지 ‘사회적 지지도’를 묻는 질문에 75.9%만 ‘그렇다’고 답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현대 사회에선 개인을 지지해주던 가족이나 친구, 연고 집단이 해체되고 있는 반면 새로운 사회관계는 아직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지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우선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죽고 싶다”는 말을 “도와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회를 만드는 게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