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노를 둘러보기로 결정한 데에는 가미코치(上高地)의 사진을 보게 된 영향이 컸다. 잔설이 남아있는 웅장한 산봉우리들을 배경으로 한없이 맑은 강이 흐르고, 그 위로 목조다리가 걸쳐 있는 가미코치의 풍광을 대표하는 사진이다.
 
 가미코치는 일본 중부산악국립공원에 속하며, 북알프스의 입구이다. 해발 1500미터 지대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 주변을 일본 북알프스의 최고봉이자 세 번째로 높은 오쿠호타카다케(3190m)를 중심으로 3000m 정도 되는 산봉우리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걱정한 만큼 날씨는 나쁘지 않았다. 구름이 끼어있긴 했지만, 전날처럼 비가 올 정도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해발 1500미터의 가미코치 쪽은 좀 다르지 않을까 기대도 있었다. 그리고 지난번 오제와 달리 이번에는 이 기대가 맞았다
 

 가미코치로 가는 관문인 마쓰모토(松本)시를 지난다. 가미코치로 다가갈수록 길은 점점 험해지고, 구불구불 이어진다. 어둑어둑한 좁은 터널도 지나간다. 댐도 보인다. 하지만 가미고치로 다가갈수록 하늘은 푸른 얼굴을 더욱 자주 드러낸다. 

 가미코치는 환경보호를 위해 승용차를 규제한다. 사완도(澤渡) 주차장에 차를 대고, 버스로 갈아탄다. 버스는 또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간다. 점점 깊숙한 산골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버스가 다이쇼이케(大正池) 정류장에 잠시 멈추자 나무들 사이로 호타카 산봉우리들의 웅장한 모습이 얼핏 보인다. 
 
 버스는 가미코치 제국 호텔을 지나 가미코치 버스센터에 도착한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버스센터를 빠져나와 숲길을 잠시 걸어가자 눈 앞으로 사진에서 봤던 풍광이 펼쳐진다.

   다른 게 있다면 산봉우리들에 잔설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산봉우리들이 구름에 덮여 전모를 아주 잠깐씩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눈이 녹은 만큼이나 산과 계곡들은 아름다운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길은 강변을 따라 이어진다. 아즈사가와(梓川). 강물은 수정처럼 맑다. 그 위에 갓파바시(河童橋)라는 목조다리가 걸려 있다. 그 뒤로 산들이 웅장하고 유려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가미코치의 랜드마크다. 그냥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풍광이다. 산과 강과 녹음(綠陰)이 엮어 만든 가미코치. ‘신이 내려선 땅’으로 부르는 이유를 알 만하다.

 강변에 앉아 시간가는 줄 모르고 풍광을 바라본다.  가끔 압도적인 풍경을 볼 때마다 ‘뭐라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빈약한 상상력과 표현력을 탓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가미코치 ‘부라부라’(어슬렁어슬렁)는  아즈사강 유역을 따라가는 코스다. 갓파바시를 중심으로 하류에 있는 다이쇼이케부터 상류에 있는 도쿠사와(德澤)까지 약 6㎞에 걸쳐 있다. 물론 호타카 산봉우리들을 등산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전에 만난 일본인 기자는 지난 여름 휴가 때 아내랑 이곳을 사흘에 걸쳐 올랐다고 했다.
 왕복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는 코스를 선택했다. 묘진이케(明神池)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로 한다.

 갓파바시를 건너 반대쪽 강변을 따라 난 길을 올라간다. 울창한 나무들에 가려 길은 금새 어둑어둑해진다. 중간중간 얕은 여울이 흐르는 게 눈에 띈다. 야생백합 같은 꽃들도 드문드문 보인다. 지난 번 갔던 오제처럼 습원(濕原)지대도 나와서 목도를 따라 걷는 구간도 있다. 초록색 산봉우리들과 습지, 말라버린 나무들이 어우러져 묘한 느낌을 주는 풍경도 나타난다.

 1시간을 넘게 걸어간 곳에 묘진바시(明神橋)가 나타난다. 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면 묘진이케가 나온다. 이로리(井爐裏·일본식 화덕)에서 생선을 구워주는 오래된 가게가 있고, 휴게소가 있다.
 묘진이케 입구에는 신사(神社)의 배전이 있어 일본인들이 줄을 서서 합장을 하고 있다. 묘진이케는 호타카신사의 신역에 속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따로 입장료(300엔)를 받고 있다.

 연못 입구에 붉은색 목조 배가 묶여져 있다. 매년 10월8일 이곳에서 열리는 오후나 마쓰리(축제) 때 사용된다고 한다.
 다소 황량해보이는 마른 나무들과 암석들이 드문드문 박힌 묘진이케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구름과 푸른 하늘을 비춰내면서 정적에 싸여 있었다. 

 묘진바시를 건너 강 반대편으로  간다. 묘진칸이라는 숙소가 나온다. 여기서 바라보는 산봉우리들의 모습은 또 다른 느낌이다. 이곳은 갈림길이다. 좀더 위로 걸어가는 코스가 있지만, 갓파바시쪽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반대편 길과는 달리 드문드문 산봉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더위와 피로에 저질체력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텐트들이 잔뜩 세워진 캠핑장이 나온다. 조금 더 내려가니 갓파바시가 다시 보인다. 누군가 잠시 자리를 비운 건지 가미코치의 풍광을 담은 캔버스가 놓여 있다. 마치 이날 가미고치 부라부라의 마지막 붓터치를 잊고 가버린 느낌이다. 

 버스를 기다린 끝에 타고 다시 사완도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렌트카로 다시 갈아타고 왔던 길을 돌아간다. 저녁을 할 겸 마쓰모토 시내로 들어갔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성이라는 마쓰모토성은 이미 개방시간이 지나서 멀리서 모습만 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숙소는 나가노시에서 더 북쪽으로 간 곳에 있다. 마쓰모토시에서 1시간30분은 걸리는 곳이다. 가는 길에 한 군데를 더 들리기로 했다.
 오바스테(姨捨). 아주머니를 버린다는 뜻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고려장’ 비슷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층층이 쌓인 논들과 해발 500미터에 위치한 역사(驛舍)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아름다워서 일본 3대 차창(車窓) 풍경으로 꼽히는 곳이다. 열차가 지그재그식으로 가는 스위치백 방식이어서 일본 열차팬들에게도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이게 잘못된 판단이었다. 오바스테를 찾아가는 길은 험했다. 해가 져서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산길을 한참 가야 했다. 건물도 없고, 지나가는 차들도 거의 없다 보니 무서운 느낌이 더 가슴을 죄어왔다. 산 정상에서 보게 된 야경은 물론 아름다웠지만, 오바스테의 논은 깜깜해서 보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숙소가 있는 유다나카(湯田中) 온천 마을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빗줄기가 굵어져 있었다. 길을 헤매다 겨우 숙소를 발견했다. 숙소의 주인장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는 얼굴로 맞아주었다. “온천이 24시간 한다”고 알려주면서. 이럴 땐 바로 온천에 들어가는 게 최선이다. 뜨거운 온천물을 따라 피로도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덩그러니 넓은 다다미방 숙소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하루의 마무리는 맥주다.



Posted by fontif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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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talgi21.khan.kr 딸기21 2017.09.22 1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미코치, 묘진이케 넘나 좋지! 흑흑 다시 가보고 싶지만 다시 갈 일은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