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얏나무 아래에선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말이 있다.”
24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친구가 이사장이었던 가케(加計)학원의 수의학부 신설에 총리 측이 압력을 행사했다는 ‘사학 스캔들’을 둘러싼 대응에 미진한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내 친구와 관련된 일이라서 의혹의 눈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까지 답변에서는 그런 관점이 부족했다”며 “항상 정중하게 설명하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지난 1일 도쿄도의회 선거 지원연설에서 야유를 보내는 청중들에게 “이런 사람들에게 질 수 없다”고 말한 데 대해서도 “부덕의 소치”라고 몸을 낮췄다.
이런 발언들은 지지율이 계속 추락하는 등 민심의 ‘역풍’이 가라앉지 않는 상황에서 국면 전환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아베 총리는 당초 이날 국회 출석에 대해서도 ‘필요없다’던 입장이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자세 변화가 민심을 돌려세울 지는 미지수다. 현재 일본 국민의 70% 정도가 사학 스캔들에 대한 정부 설명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저자세’를 보이면서도 가케학원 의혹에 대해선 “압력을 행사하거나, 의뢰한 적은 전혀 없다”고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다.
집권 자민당 내에선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이 20%대까지 추락한 가운데 주요 지방선거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면서다.
전날 실시된 센다이(仙台)시 시장 선거에서 민진당·공산당 등 야당이 지원한 고리 가즈코(郡和子)후보가 자민당과 연립여당 공명당이 밀었던 스가와라 히로노리(菅原裕典) 후보를 꺾었다. 자민당은 2일 도쿄도의원 선거에서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이끄는 ‘도민퍼스트회’에 제1당 자리를 내준 데 이어 센다이 시장 선거에서도 패한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도민퍼스트회의 ‘돌풍’이 없는 상태에서 여야가 지지하는 후보가 직접 대결하는 구도에서 패해 더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 추락은 멈추지 않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이 22~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지난달에 비해 10%포인트 떨어진 26%를 기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TV도쿄가 21~23일 실시한 공동 여론조사에서도 전달보다 10%포인트 내려간 39%로 조사됐다.
주목할 대목은 아베 총리의 국정 운영에 반대하는 의견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이니치 여론조사에서 내년 9월 총재 3선을 노리는 아베 총리에 대해 ‘바꾸는 편이 낫다’는 의견은 지난 3월 조사보다 19%포인트가 높은 62%를 기록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부총리 겸 재무장관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을 유임시키는 개각 구상에 대해서도 52%가 ‘평가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아베 총리는 다음달 3일 개각을 통해 지지율 회복의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자칫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자민당 내에선 위기와 책임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한 중진 의원은 “강압적인 정권 운영의 계산서가 돌아오고 있다”며 “개각도 소용 없다”고 밝혔다. 당 간부는 “지지율은 내려가고, 선거에선 이기지 못하고 있다. 톱을 바꾸지 않으면 다음 중의원 선거는 싸울 수 없다”고 말했다. 비공식적인 언급이지만, 아베 총리의 퇴진을 거론한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할 경우 자민당 내에서도 퇴진론이 제기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마이니치에 따르면 제1차 아베 내각 때인 2007년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뒤 아베 총리가 퇴진하기까지의 기간은 1개월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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