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시이 다에코, <여제 고이케 유리코>

<여제(女帝)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이시이 다에코(石井妙子) 저, 분게슌주(文藝春秋) 출판

짧은 일본어 실력 탓에 손에 든 지 2개월을 훌쩍 넘겨서야 (대충) 다 읽었다.
일본에 있는 지인이 “고이케 정말 엄청나다”면서 추천했던 책이다.

인구 1400만명의 거대도시 도쿄의 첫 여성 도지사, 첫 여성 방위성 장관, 한때 아베 정권을 위협해 최초의 여성 총리 후보로 이름이 거론되는 인물. 한편으론 수많은 정당을 오가며 항상 권력자 옆에 몸을 둬온 탓에 ‘권력과 자는 여자’, ‘정계 철새’라고 야유받는 인물.
책은 이런 고이케 유리코라는 인물의 허상과 실상을 100명이 넘는 관계자 인터뷰와 3년 간의 자료 추적 등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책에서 그려지는 고이케는 끊임없이 높은 곳을 오르려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가 단 날개는 언제 녹아버릴지 모르는 ‘이카로스의 날개’다. 그녀의 경력이 온갖 거짓과 과장 등에 의해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경력의 출발점인 ‘일본인 최초의 카이로대학 수석 졸업’부터가 의심스럽다. 저자는 그녀와 자취를 함께 한 여성 등의 증언, 그녀가 쓰는 초딩 수준의 이집트어를 통해 수석은커녕 졸업도 못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고이케는 자신의 말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해왔다. 환경장관 시절 미나마타병 환자들에 대한 냉대, 도지사 시절 쓰키지 시장 상인에게 했던 약속의 번복 등. 자신이 했던 말에 대해 “아니오, 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는 태연함이라니.
고이케는 일본의 남성 중심 사회가 유리천장이 아니라 철천장이라고 했지만, 이는 절반만 진실이다. 그녀는 누구보다 여성임을 적극 어필해왔지만, 철저히 남성 시각에서다. 반면 여성으로서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예컨대 방송 진행자 시절 그녀의 주도로 ‘터키탕’이라는 명칭 대신 ‘소프랜드’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하지만 고이케가 문제시한 것은 터키라는 국명을 명칭에 사용한 것일 뿐, 매춘 그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녀의 실상은 다음 에피소드에서도 드러난다. 고이케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적극 제기하면서 대북 강경파로 지지를 넓혀왔다. 납치자 가족 모임에 빠지지 않고 나가‘사진찍기’를 했고, 납치자의 일시 귀국 때는 미디어를 의식해 공항 트랙까지 달려나갔다. 어느날 납치자 가족 모임 행사가 끝나자 쏜살같이 자리를 떠났던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깜박하고 두고온 가방을 찾기 위해서다. 가방을 찾은 뒤 그녀가 한 말. “납치된 줄 알았네”. 납치자 가족들 앞에서 할 말인가.
고이케는 전형적인 포퓰리스트로 통한다. “그녀의 발언이나 가치관은 그 때 그 때, 누구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는가로 크게 변한다. 그녀에게는 국가관이나 이념은 없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책을 읽어가다보면 “도대체 뭐 하는 인물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과연 그녀만 그럴까. 거짓말과 과장, 말뒤집기 등은 상당수 정치인들의 속성 아닌가. 저자는 지난 총선에서 고이케 저격수로 나섰던 차세대 주자 고이즈미 신지로의 화려한 외모나 언변 등을 평가하면서 “ 그도 역시 고이케 유리코였다”고 했다. 그런 고이즈미도 지난해 아베 정권에서 환경상에 기용된 뒤 뜬구름 잡는 답변과 알맹이 없는 말로 평판이 추락했다.

결국 허상에 쌓여있는 정치인들을 제대로 꿰뚫어보는 게 필요한데, 그 책임에서 미디어는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 미디어는 고이케의 화려한 언변에만 주목해 그녀의 거짓말을 간파하지 못했다. 고이케는 미디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먹을거리를 던져줬을 뿐인지도 모른다.

다음은 본문 발췌.

그녀는 헤이세이가 시작될 때 눈부시게 TV계로부터 전신해 정치가가 됐다.
 2세, 3세로 가득한 정계에서 가령 정권 교체가 있어도, 가라앉는 일 없이 살아남았다. ‘권력과 자는 여자’, ‘정계철새’라고 야유받으면서도 항상 당수나 총리로 불리는 사람의 옆에, 그 몸을 두어왔다. 권력자는 교체된다. 하지만, 그녀는 교체되지 않는다. 그런 예를 달리 알지 못한다.
 남성 위정자에게 발탁돼 최고 지위에 오르고, 게다가 남성 사회를 적에 비겨 계단을 올랐다. 여성 최초의 총리후보자로서, 몇 번이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
 이만큼 권력을 요구해, 권력을 손에 넣은 여성은, 과거에는 없다. 왜, 그녀에만, 그것이 가능했던 건가.
 아마 그녀에게는, 사람을 끄는 뭔가가 있는 것이리라. 권력자가 좋아하고, 대중이 따르는 뭔가가.
 선거에서의 언어는 강력하고, 열을 띠고,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연극 비슷한 행위나 과잉 표현. 심한 요설로 들었을 때 느낌이 좋은 연설. ‘적’을 만들어내서 싸우는 자세를 보이면서, 타자로부터 공감을 끌어내가는 수법.

 고이케와 일본사회의, 특히 일본 미디어의 무름을, 이 때, 확실히 느꼈을 것이다. 대개의 거짓말은 간파당하지 않는다, 라는 것을. 자신이 말하는 것을 그댈 믿어서 활자화 해주는 남성 기자들. 상대가 무엇을 기뻐하는지, 어떤 화제를 원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던져주면 좋을 뿐이었다. 신문에서 활자가 되면, 그것은 사실로서 세상에 인정된다. 신문기자는 너무 속이기 쉬웠다.

 “왠지 먹을까 먹힐까라고 하는 감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회의 정글을, 혼자서 서바이벌하고 있는 것 같은. 무상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인 거 아닌가.”
 

   1개월후, ‘터키탕’이라는 명칭은 사라지고, 새롭게 ‘소프란도’라고 하는 단어가 탄생했다.(중략) 고이케는 이 1건으로도 알 수 있듯이 ‘터키탕’이라는 성풍속의 존재 그 자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문제시한 것은 터키라는 국명을 명칭에 사용한 것으로, 거기에 있는 매춘 그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거꾸로 존속을 긍정하는 측에 서 있었기 때문에 명칭 변경을 생각해낸 것이리라. 그녀는 남성의 성욕에 대한, 성풍속에 대한 이해가 있다, 얘기를 아는 여성이라는 인상을 남성들에게 주는 것으로 남성 사회를 살았다.
 
 그녀의 발언이나 가치관은 그 때 그 때, 누구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는가로 크게 변한다. 그녀에게는 국가관이나 이념은 없었다. 호소카와와 자민당 총재, 고노 요헤이와의 사이에 교섭이 있었을 때도, 고이케는 호소카와를 노골적으로 칭찬하고 있다.
 
 고이케는 자궁근종이라는 병을 얻었을 때, 이를 널리 공표하고, 스스로를 병 때문에 아이를 가진다는 최대의 꿈을 갖지 못한 여자라고 정의해, 주부층에 대한 접근을 꾀한 거 아닐까. 고이케는 병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아이를 가지고 싶었지만, 자궁근종에 걸려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말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자궁근종 수술을 받은 것은 46세 생일을 맞기 직전의 일이다.
 
 어려운 상황을 필사적으로 호소하즌 그녀들에 대해, 고이케는 손가락에 매니큐어를 칠하면서 응했다. 한번이라도 얼굴을 들어올리는 일은 없었다. (중략) “이제 매니큐어 바르는 거 끝났으니까 돌아가 줄래요? 나 선거구 바뀌었기도 하고.”

 중동이 전문이라고 자칭하지만 미국이 9·11 후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해도 독자적인 의견이나 시점을 꺼내든 일은 없다.

 그녀는 항상 기세가 있는 것에 붙는다. 내리막길에 들어선 것, 약한 것은 처음부터 눈에 들지 않는다. 그 때, 가장, 강한 것을 요구한다. 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내가 권력자 있는 곳에 건너가는 게 아니라 내 서포트로 그 사람이 권력자가 되는 것입니다.”(<여성세븐> 2008년1월30일호)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를 과도하게 의식한 표정 만들기 방식, 이야기 방식, 결정적 대사의 준비. 그(고이즈미 신지로)는 자신의 매력을 흩뿌리는 방법을 알았다. 외관과 음성의 좋음, 말장난 같은 단어 사용. 아재개그로 사람의 마음을 잡는다. 그도 역시 ‘고이케 유리코’였다.

 말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기억에 없다로 끝내지고 만다. 과거는 얼마든지 바꿔써지고 만다. 도지사가 되어서도. 왜냐면 그것이 그녀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라이 사토시, <국체론>  (0) 2020.10.30
김시종, <재일의 틈새에서>  (0) 2020.10.21
스이타 사건과 한국전쟁에 '참전'한 일본  (0) 2020.09.04
아베 다음은? <일본의 내일>  (0) 2020.08.27
임진강과 박치기  (0) 2020.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