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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다음은? <일본의 내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건강 이상설(피를 토했다는 보도까지)에 사퇴설까지 나오면서 ‘포스트 아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우연히-후배가 건네줬다- 읽게 된 <일본의 내일>(원제 : 자민당-가치와 리스크의 매트릭스)은 이런 관심에 맞춤한 책이다.

 아베를 비롯해 이시바 시게루, 스가 요시히데, 노다 세이코, 고노 다로, 기시다 후미오, 가토 가쓰노부, 오부치 유코, 고이즈미 신지로 등 자민당 정치인 9명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들의 저서와 대담집, 인터뷰 등을 통해 분석했다. 원제에 나와 있듯 ‘위기’를 세로축, ‘가치’를 가로축으로 삼아 이들 9명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분석했다. ‘위기’ 해결에 사회제도와 개인 자조 어느 쪽에 방점에 두는지, 자유주의와 권위주의 어느 가치에 가까운지 좌표를 찍는 식이다.
 예컨대 아베는 Ⅳ 영역(권위주의, 위기의 개인화)에 위치하고, 라이벌인 이시바는 위기의 개인화라는 점에선 아베와 비슷하지만 자유주의 성향이라는 이유로 Ⅲ 영역에 위치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 정치인 개인뿐 아니라 자민당으로 대표되는 일본 보수정치의 좌표가 어떻게 변해왔냐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자민당은 과거 1970년대 Ⅰ(위기의 사회화·권위주의)과 Ⅱ(위기의 사회화·자유주의) 유형의 융합체였다. 하지만 1980년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내각 때 ‘위기의 개인화’ 경향이 세력을 얻고 1990년대 후반까지 ‘위기의 사회화’와 옥신각신했다. 이 경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의 ‘신자유주의 노선’(Ⅲ)이었고, 뒤를 이은 1차 아베 내각은 우파적 이데올로기가 강한 Ⅳ 영역으로 자민당을 끌어당겼으며 2차 아베 내각에서 ‘일본형 신보수주의’가 헤게모니를 쥐게 됐다.
 이런 사실은 9명의 정치인들 대부분이 Ⅲ과 Ⅳ에 자리하고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다만 자민당 내엔 아직 Ⅱ 세력이 존재하는데 노다 세이코, 오부치 유코가 이에 속한다. 두 사람 모두 자민당 내에선 마이너리티인 여성이고, 출산과 육아의 경험을 통해 위기의 사회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하나, 이들 정치인들은 자민당 보수 본류가 떠받치는 구조 속에 정계에 입문한 탓에 어느 정도 다양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아베가 2012년 9월 두 번째로 자민당 총재에 취임하고 나서 당선된 의원들(이른바 ‘아베 칠드런’)을 살피면 Ⅳ 경향이 강하게 보인다. 자민당 중의원 의원 전체의 40%에 달하는 이들 젊은 의원들은 우파적 이데올로기 색이 강하며 자기 책임론을 기조로 하는 경향을 보인다. 저자는 아베 정권의 장기화에 따라 젊은 의원의 이런 경향이 가속화하고 있고, 이들이 중견·베테랑이 되는 시기의 자민당은 Ⅳ 유형의 정당으로 똘똘 뭉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아베와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것 또 하나. 아베가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그에 대한 언급도 자주 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인데 저자는 아베가 거론하는 또다른 일화에 주목한다.
 기시가 1960년대 미·일 안보조약을 통과시키기 위해 오노 반보쿠의 찬성을 얻으려고 ‘다음 정권을 오노에게 양보한다’는 취지의 각서를 썼다는 얘기다. 하지만 총리직은 오노에게 선양되지 않았다. 친족이 “너무 심한 처사 아니냐”고 하자 기시는 “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각서를 안 썼다면 안보 조약은 과연 어떻게 되었겠는가”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일화를 통해 아베는 동기윤리에 문제가 있어도 결과만 책임지면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아베가 국회 답변 등에서 그때그때의 자리만 모면하는 경향이 강하고 성실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일화는 기시다를 분석하는 장에서 되풀이된다. 자민당 내 ‘비둘기파’로 통하는 ‘고치카이’(宏池會)를 이끄는 기시다는 아베로부터 총리직을 물려받기를 원하면서 협조 노선을 취하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아베는 조부인 기시가 오노 반보쿠에게 ‘다음 정권을 양보한다’는 취지의 각서를 써놓고도 휴짓조각으로 만든 일화를 교훈으로 삼고 있다. 그런 아베에게 전면적으로 협력함으로써 정권을 선양받으리라는 기대를 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