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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모토 유카 편, <누가 한일 대립을 만들었는가>

**원문 번역 발췌

-징용공 문제나 ‘위안부’ 문제, 더욱이 일본의 조선식민지지배 문제는 인권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문제이고, 피해자의 존엄을 어떻게 회복하는가를 묻게 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징용공
모집(1939~ ) : 그 실태는 조선총독부나 일본 경찰이 노동자 모집을 담당하는 것
관알선(1942~ )
징용(1944~ )
-어떻게 강제동원: 납치, 폭력/ 사기/ 조선인의 빈곤상태를 이용해 노동에 동원/ ‘일본에 가라’고 요구받으면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압력이 그 지배 말단까지 미쳤다는 것/ 정신적 지배에 의한 강제

-근대시민국가에 있어서 국가와 개인은 구별돼, 국가는 개인의 청구권을 일방적으로 소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기본 원리입니다. 그리고 예외적으로 소멸시키는 경우에도 명확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일 청구권) 협정에는 그러한 것이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 일본 정부는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고 있다라는 견해를 유지하면서도 재판에 있어 구제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견해를 바꾸고 있습니다.

-군에 의한 폭력적인 연행이 조선에서 있었다는 것에 대해선 피해자의 증언은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사료는 지금으로선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없었다고 하는 것을 밝혀주는 사료도 없습니다.
-역사상 처음 ‘위안부’라고 하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1932년 일본이 중국에서 일으킨 상하이 사변 때. 상하이에서 일본 해군이 위안소를 만들고, 육군도 위안소를 만들었습니다.

-2013년에는 무라야마담화에 관련해 아베 총리도 국회에서 “침략의 정의는 학계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발언했다(실제는 1974년 유엔 제29회 총회에서 ‘침략의 정의에 관한 결의’는 일본도 찬성해 채택됐다).

-2014년 아사히신문의 위안부 보도에 관련해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일본의 이미지는 크게 훼손됐다. ‘일본이 나라째 성노예로 했다’라는 말할 수 없는 중상이 세계에서 행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즉,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를 사실의 문제나 인권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이미지나 일본인의 명예가 훼손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선 ‘일한정부가 협력’해서 재단의 사업을 하는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돈을 낸 이상의 ‘협력’은 하지 않고, 재단측이 아베 총리에 사과의 편지를 요구해도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축했습니다.
-또 합의 문서를 읽어도 소녀상의 이전까지는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아베 정권은 소녀상 문제를 일부러 거론해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한국’이라는 선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대응에선 ‘책임을 통감’한다고 하는 합의의 문장을 일본정부 스스로가 공문(空文)으로 만들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재단은 활동기간중에 생존해있는 피해당자자(47명중 34명)나 돌아가신 피해자의 유족에게 회복과 치유를 위한 현금을 건냈습니다. 이걸 들어 당사자의 다수가 ‘합의’를 지지했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지만, 받아들인 분들이 뭔가 의견을 표명한 것도 아닌데, 너무나 난폭하고 잔혹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법상 무엇을 가지고 ‘공관의 안녕의 방해, 위엄의 침해’(빈 조약 22조)인 것인가는 한 뜻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고 국제법학자인 아베 고키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판단이 시사하고 있는 것은, 공관의 안녕·위엄에 걸린 문제는, 사절단영사기관의 임무수행이 방해받고 있는가, 공관을 향한 행동이 공격적이고 모욕적인 것인가, 게다가 표현·집회 등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가, 라고 하는 것을 충분히 고려해 판단해야한다’라는 것입니다.
-국제인권법 관점에서 보면 기념비의 설치는 ‘인권침해의 피해회복 조치의 하나’이고 ‘과거와 대면하고, 과거에 대해 알 시민 권리’와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세계인권선언에는 누구라도 재판을 받는 데 ‘완전하게 평등의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일본은 국제법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해 있지 않지만 재판에서 청구할 수 없다’고 하는, 2007년 4월 최고재판소 판결은 국제법상의 의무를 통째로 부정하는 위법적인 판단이라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도 한국대법원이 전 징용공의 청구를 인정한 것만으로 일본 미디어가 ‘해결이 끝난 문제를 다시 문제삼는다’고 소란을 떠는 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거기에는 ‘반일’이라고 단정한 문재인 정권에 대한 혐오감과, 과거 식민지였던 한국에 대한 ‘종주국’ 측의 차별의식이 비쳐보인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반일’은 있지만, 일본의 ‘혐한’처럼 일본인의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배제해 멸시하는 ‘혐일’ 감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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