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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과 박치기

영화 <박치기>에서 일본인 주인공과 재일조선인 여주인공이 '임진강'을 부르는 장면

최근 번역 출간된 니시무라 히데키의 <'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 재일조선인과 스이타 사건>(원제는 직역하면 '조선전쟁에 참전한 일본', 심아정·김정은·김수지·강민아 옮김, 논형)에 나오는 구절. 영화 <박치기>로 유명세를 탔던 노래 '임진강'에 대한 설명이다.

'임진강’은 원래 북한에서 만들어진 반전가이지만 얼마 안 있어 포 쿨(포크 크루세더스·The Folk Crusaders)이 부르면서 일본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 곡이 세상에 나오는 계기를 만든 것은 세 명으로 구성된 그룹 포쿨의 제4의 멤버인 작사가 마쓰야마 다케시(松山猛)였다. 마쓰야마는 1952년생으로, 교토 히가시야마(東山)의 남단 센뉴지(泉涌寺·천황가의 사원) 부근에서 자랐는데, 이 일대는 재일조선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기도 했다. 재일조선인이 북한으로 귀국하던 시기의 어느 날이었다. 중학생이었던 마쓰야마는 친구가 다니는 조선중고등학교 에 들렀다. 마쓰야마는 이 곡을 처음 들었던 순간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그때였어요. 어느 교실에선가 그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왔던 거예요. 어딘지 모르게 구슬픈 멜로디는 저의 순수한 영혼에 날아와 꽂히고 말았죠.”
마쓰야마는 조선학교의 합창부였던 친구의 누나에게 그 노래의 한국어 가사와 일본어로 번역된 가사를 받았고, 고등학생이 된 후에 친구였던 포쿨의 멤버에게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포쿨의 멤버 기타야마 오사무(北山修)는 곡 발표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때의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사회자인 내가 ‘여러분 상상해 보세요. 만약 오사카와 도쿄 사이 어디쯤에서 일본이 분단되어 있다면...’이라고 운을 뗐고, 가토 가즈히코(加藤和彦 )씨의 전주로 노래했던 우리는 젊디 젊은 스무 살이었다.”
URC레코드 측에서는 임진강의 작사, 작곡자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조선총련은 이 곡의 작곡가와 작사가를 명기하도록 요구했고 그에 대해 하타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원래는 북한 노래인 이 곡이 일본에 널리 알려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한국대사관에서 레코드 모회사(母會社)에 압력을 가해 곡의 발매를 중지시켰다.”
그 곡이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계기로 한국 내에서 재평가되었다. 한국의 인기가수 김연자가 CD를 발매하고, 2001년 말에 NHK 홍백가합전에서 불렀다. 하타가 시대가 변했다며 감격스러워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덧붙이자면 김연자는 곡의 제목을 ‘림진강’이라고 북한발음으로 표기하였고, 작사 박세영, 작곡 고종한, 번역 마쓰야마 다케시라고 기재하였다.
그 ‘림진강’의 부활을 계기로 포쿨이 재결성되었고, 그들의 ‘임진강’ CD가 새롭게 발매되었다. 또, 뮤지션 하마사키 아유미나 아무로 나미에 등으로 잘 알려진 대형 음반 기획사 에이백스가 지금 URC의 복각판을 발매하고 있다. 아마도 URC가 가진 음악성이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박치기>(2005)는 이 곡이 세상에 나오게 된 과정을 다룬 것으로, 이즈쓰 가즈유키(井筒和幸)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만든 영화인데, 영화 잡지 <기네마 준보>에 올해의 베스트 텐 1위에 빛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