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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일본 니혼 닛폰

떠밀린 아베, 결국 긴급사태 선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사진)가 7일 “도쿄에서 감염 확산이 계속되면 (코로나19 감염자가) 2주 뒤 1만명, 한달 후 8만명을 넘을 것”이라며 ‘긴급사태’를 선포했다. 그간 경제 충격 등을 우려해 긴급사태 선포에 소극적이다가 확진자 급증에 ‘의료 붕괴’ 경고음이 커지자 떠밀리듯 선포하는 모양새가 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도쿄 등의 감염 확산이 쉽게 제어하기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에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베 총리는 이날 저녁 정부대책본부를 열고 “전국적이고 급속한 만연에 의해 국민생활·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줄 사태가 발생했다고 판단해 ‘긴급사태 선언’을 발령한다”고 했다. 대상 지역은 도쿄, 가나가와, 사이타마, 지바 등 수도권을 포함해 오사카, 효고, 후쿠오카 등 7개 광역지자체다. 기간은 내달 6일까지 한 달 간이다.
 아베 총리는 “사람 간 접촉을 최저 70%, 최대 80%까지 줄이면 2주 후 감염자 감소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서 “생활에 필요한 경우를 빼곤 멋대로 외출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했다. 일본에서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긴급사태 선언이 발령된 것은 처음이다. 앞서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전문가로 구성된 ‘기본적 방침 등 자문위원회’를 열고 7개 지역을 대상으로 한 긴급사태 선포에 대해 ‘타당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국회 중·참의원 운영위원회에서 이런 방침을 보고했다.
 긴급사태 선포는 8일 0시부터 발효된다. 대상 지역 광역단체장은 외출 자제 및 학교·상업시설 사용 중지 요청, 임시 의료시설을 위한 토지·건물 수용, 약품 등 필요물자에 대한 수용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도쿄도의 휴업 요청 대상에 대학과 학원, 운동시설, 극장, 백화점·이발소·홈센터 등 상업시설, 바·파친코점 등 오락시설이 포함된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 역대 최대 규모의 경제대책도 발표했다. 이날 임시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한 긴급 경제대책의 사업 규모는 108조엔(약 1200조원)으로,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리먼 쇼크’에 대응해 2009년 발표한 경제대책 규모 56조8000억엔의 2배에 육박한다.
 하지만 긴급사태 선포를 두고, 때늦은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말부터 도쿄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 지사 등 지자체장과 의료계에서 도시봉쇄 및 긴급사태 선언 등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쏟아졌지만, 아베 정권은 “경제가 말도 안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전문가들은 실효성을 표시했다. 마쓰모토 데쓰야(松本 哲哉)국제의료복지대 교수는 아사히TV에 출연, 현재 도쿄 확진자 80%의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상황을 거론하며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자가 절반을 넘었던 지난달 말 선언을 했으면 좋았다. 지금은 정말 아슬아슬하다”고 했다. 영국 BBC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도쿄에서의 감염 확대는 이미 쉽게 제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아베 총리가 이날 국회에 긴급사태 선포를 보고하면서 개헌 논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중의원 운영위에서 “국가와 국민이 어떤 역할을 하면서 국난을 극복해야 하는가를 헌법에 반영하는 것은 매우 무겁고 중요한 과제”라며 “코로나19 대응도 근거로 하면서 국회 헌법심사회에서 여야의 틀을 초월한 활발한 (개헌) 논의를 기대한다”고 했다. 긴급사태 조항을 포함하는 개헌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한 것이지만, 헌법 9조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것까지 노린 발언이란 해석이 나왔다. 아베 총리 의도대로 일단 개헌 논의가 물살을 타면 이른바 평화 헌법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