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지 벗어나면 방사능 위험 여전…빈집·후레콘 백 곳곳에
성화 지나가는 신청사, 원전과 7㎞…버스로 주민 동원 예정
“아베 후쿠시마 통제 발언 새빨간 거짓말…올림픽 기대 안 해”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지난달 27일 일본 후쿠시마(福島)현 후타바(雙葉)군 나미에(浪江) 마을에서 만난 시미즈 유카리(淸水裕香里·54)는 이렇게 말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 총리가 2013년 도쿄올림픽 유치 연설 때 후쿠시마 상황에 대해 “언더 컨트롤(통제하)”이라고 한 걸 두고서다.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부터 9년. 지난달 26~27일 직접 둘러본 후쿠시마는 미증유의 재해가 초래한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가 거주구역으로 지정한 곳을 조금 벗어나면 ‘귀환곤란구역’으로 불리는 방사능 위험구역이 나왔고, 버려진 빈집들이 폐허처럼 방치돼 있었다.
그러다보니 오는 7월 도쿄올림픽을 후쿠시마 부흥과 안전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부흥올림픽’으로 삼는다는 아베 정부의 구상에, 현지주민들은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아베 정부는 성화 봉송을 오는 26일 후쿠시마 후타바군에서 시작하고, 후쿠시마 등 재해지 농수산물을 올림픽 선수촌에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그런다고 후쿠시마의 현실이 바뀌겠느냐는 것이다. 올림픽이 끝난 뒤 후쿠시마가 잊히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1. 도쿄에서 동북쪽으로 뻗은 국도 6호선. 지난달 27일 버스가 후쿠시마현 후타바군으로 들어가자 분주한 공사 현장과 금방 지은 듯한 건물, 그리고 ‘후레콘 백’으로 불리는 검정자루들이 보였다. 방사능 제염작업으로 나온 오염토 등을 담은 것이다. 후쿠시마현 내 오염토는 약 1657만㎥. 일본 정부는 2045년까지 현 바깥에서 최종처분할 계획이지만, 이를 믿는 주민들은 17%에 불과하다(2월22~23일 아사히신문 여론조사).
후쿠시마 원전이 있는 후타바군은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 원전사고라는 세계 유일의 ‘복합재해’를 당했다. 국도 6호선 풍경은 도미오카(豊岡) 마을 중간쯤서 바뀐다. 유리가 깨지고 벽이 갈라진 건물들과 그 앞을 막아선 바리케이드들. 연간 방사선량이 50밀리시버트(mSv)를 넘어 주민 귀환이 어렵다고 판단한 ‘귀환곤란구역’에 들어온 것이다. 귀환곤란구역에 걸친 국토 6호선은 약 15㎞. 도미오카 마을에서 일본 정부 기준치(시간당 0.23μSv) 이하 이던 방사선량은 오쿠마(大熊) 마을로 들어가자 0.38μSv, 후쿠시마 제1 원전에서 2km 떨어진 지점에선 1.5μSv를 기록했다.
#2. 버스가 귀환곤란구역을 벗어나자 곧바로 나미에 마을 시가지에 진입했다. 마을 여기저기선 건물 해체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아 삭아가는 집들을 부수는 것이다. 9년 전 2만2000명이던 마을의 현재 인구는 1200여명. 2017년 3월 마을 전체의 20%에 피난지시가 해제됐지만, 5%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나마 60% 이상이 고령자다. 후쿠시마시에서 피난민들을 돕다 이주해온 이즈미 와타루(和泉亘)는 “처음 마을을 보는 사람은 고스트 타운(유령 마을)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고향에 돌아와도, 생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가와무라 히로시(川村博)는 높은 방사능 수치 때문에 애써 키운 채소를 출하하지 못했다. 궁리 끝에 화훼에서 활로를 뚫었고 지금은 ‘1억엔 (약 11억원) 출하’를 목표로 하고 있다. 견습생 4명이 내년 독립한다. 하지만 가와무라는 ““내 자식은 돌아오지 않는다더라”고 했다.
#3. 26일 오쿠마 마을 오가와하라(大川原) 지구에선 주택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논밭이던 곳이 ‘특정부흥재생거점’으로 지정됐다. 지난해 5월과 6월 마을사무소 신청사와 재해공영주택(50채)이 각각 개관했고, 이주자를 위한 임대주택(40채)이 정비되고 있다. 50여세대가 입주해있다.
하지만 1㎞ 앞은 귀환곤란구역으로, 바리케이트에 막혀 있다. 신청사는 원전에서 불과 7㎞ 떨어져 있다. 오쿠마 마을은 2019년 4월 마을의 38%에서 피난지시가 해제됐다. 다카다 요시히로(高田吉弘) 오쿠마 마을 만들기 사무국장은 “재해 전 인구 1만1000명 중에 100여명밖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올림픽 성화가 26일 마을사무소 신청사 앞을 지나는데, 떠들썩함을 연출하기 위해 마을 밖에 있는 주민들을 버스로 데려올 예정이다.
그럼에도, 아베 정부는 후쿠시마 정상화를 위한 절차를 밟아나가고 있다. 후쿠시마현의 피난지시 지역은 9년 전 1150㎦에서 339㎦로 줄어들었고, 이 지역을 달리는 JR열차 조반센(常盤線)이 오는 14일 전면 개통한다. 주민들도 땀을 흘리고 있다. 2011년 8월 도미오카 마을에 ‘후쿠시마는 지지 않는다’는 플래카드를 달아 주목받았던 히라야마 쓰토무(平山勉)는 “사람이 자립하지 않으면 부흥은 안 된다”고 했다. 전 도쿄전력 직원으로 원전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 요시카와 아키히로(吉川彰浩) AFW 대표는 “사람들이 다시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정비되는 게 부흥”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상화는 요원해보인다. 후타바군 6개 마을을 포함해 7개 마을 일부에는 여전히 피난지시가 내려져 있다. 지난해말 기준 4만1701명이 현 바깥에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을 부흥올림픽으로 띄우는 정부 행태를 보는 심경도 복잡하다. 다카다 사무국장은 “이 타이밍에 왜 올림픽이냐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했고, 요시카와 대표는 “내일이 바뀔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진 저널리스트 도요다 나오미(豊田直巳·64)은 “현지에서 느낀 것은 ‘부흥올림픽’ 구호의 허무함”이라며 “올림픽 보도의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늘이 돼 사람들의 현실이 보이지 않게 되는 건 아닌가”라고 했다. 도요다는 거의 매달 후쿠시마 피해 실태를 집중 취재해 사진과 영상에 담아왔으며, 지난달 21일 ‘부흥올림픽의 그늘에서-성화 릴레이가 비추는 것, 비추지 않는 것’이라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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