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치고 들어오나 싶더라고요.”
“가슴이 꽉 죄는 느낌이었어요.”
헌책방 거리로 유명한 도쿄 진보초(神保町)에서 지난 18일 저녁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이 영화에 등장한 ‘짜파구리’에 대한 이야기꽃이 피었다. 진보초 사거리에 자리잡은 한국 책 전문서점 ‘책거리’에서 열린 잡담회에서다.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기생충>에 대한 해석과 감상평을 함께 나누자는 생각에 20명 가까운 일본인과 한국인들이 보였다.
영화를 2번, 3번 봤다는 일본인 팬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말 한국에 갔을 때 영화를 처음 본 뒤 두 번 더 봤다는 60대 여성은 “영상만으로 충격을 받았고, 나중에 일본에서 일본어 자막이 달린 영화를 보고 ‘역시 그랬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03년 봉준호 감독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받았다며 사인이 들어간 봉 감독의 영화 <플란다스의 개> 에코백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영화에서 ‘‘냄새’, ‘돌’, ‘물’의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50대 여성은 “영화에서 물, 즉 비가 계속 내린다. 보통 돈이 위(고소득층)에서 아래(저소득층)까지 내려가는 (낙수) 효과를 얘기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느꼈다”고 했다. 영화가 한국 사회의 문제를 그리고 있는 데에도 관심을 보였다. 자신이 번역가라고 밝힌 30대 여성은 “영화에선 부유층이 아주 좋게 그려진다. 개인이 착한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다”고 했다. 진보초를 찾았다 우연히 이날 행사에 참가한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은 ‘한국인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라는 참석자들의 질문에 “저도 그렇고 ‘반지하 생활’ 등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많다. 격차 사회인 한국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호응을 얻는 것 같다”고 했다.
이야기는 일본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한류’에까지 미쳤다. 일본인 남성으로 유일하게 참가한 50대 남성은 “23살짜리 딸이 가수 아이유와 BTS의 열성 팬”이라며 “요즘 일본 예술에선 폐색감(꽉 막힌 느낌)을 받는데, 오히려 한국 측이 앞서가는 것 같다”고 했다. 앞서 30대 여성도 “영어책을 주로 번역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한국 문학이 재미있다는 사람이 많아서 요즘 읽고 또 읽고 있다”고 소개했다.
행사는 영화에 등장한 ‘짜파구리’가 나오면서 더욱 화기애애해졌다. 참석자들은 “생각보다 매콤하다”면서도 한 입씩 맛을 봤다. 현재 일본에선 <기생충>이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가운데 ‘짜파구리’도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 TBS 방송의 한 정보프로그램은 최근 짜파구리의 인기 비결과 만드는 법 등을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 음식점이 많은 신오쿠보에서 시식회가 열리고, ‘짜파구리’의 재료인 ‘너구리’ 라면이 ‘완판’되기도 했다. 김승복 책거리 대표는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을 때 축하한다는 전화나 엽서가 오기도 했다. 어떤 이는 꽃다발을 가져오기도 했다. 행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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