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제/김진우의 도쿄 리포트

‘원팀(ONE TEAM)’의 조건

 유행어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한 해가 저물 때쯤 ‘올해의 유행어’나 ‘올해의 신조어’ 등을 선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엔 ‘신어(신조어)·유행어 대상’이 있다. 1984년부터 출판사인 자유국민사가 한 해 동안 벌어진 사건이나 유행 등을 포착한 표현 10개를 골라 이 가운데 대상을 정해왔다.
 지난 2일 발표된 올해의 대상은 ‘원팀’(ONE TEAM)이다. 지난 9월20일~11월2일 일본에서 처음 개최된 럭비월드컵에서 사상 첫 8강에 진출한 일본 대표팀의 구호다.
 일본 럭비 대표팀 31명은 외국 출신 선수가 7개국 15명으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뉴질랜드 출신의 제이미 조셉 감독은 필요한 선수들이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대표로 선발했다. 자칫 오합지졸로 끝날 선수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낸 정신이 ‘원팀’이었다. 대표팀은 뉴질랜드 출신 리치 마이클 주장을 중심으로 결속했다. 개막전에서 러시아에 승리한 것을 시작으로 강호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사모아를 차례로 꺾고 조별리그 전승으로 8강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일본 열도는 들썩였다. 레플리카(모조품) 유니폼이 동이 나는 등 곳곳에 럭비 열풍이 일어났다. ‘신조·유행어’ 후보 30개에도 갑자기 럭비 팬이 된 사람들인 ‘벼락 팬’, 대표팀 구호인 ‘4년에 한 번이 아니다. 일생에 한 번이다’ 등 럭비 관련 표현이 5개나 들어갔다.
 이런 만큼 ‘원팀’은 ‘신어·유행어 대상’으로 일찌감치 점쳐졌다. 국적이나 출신지가 다른 이들이 다양성을 서로 인정하면서 목표를 향해 굵은 땀을 흘리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이었을 터다.
 하지만 이런 ‘원팀’의 정신은 일본 사회에선 아직은 ‘머나먼 얘기’다. 이는 ‘신어·유행어 대상’의 이례적인 심사평에서도 드러난다. “원팀은 세계에 퍼지고 있는 배외적 분위기에 대한 명확한 반대 메시지인 동시에 가까운 장래에 이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본의 존재 방식을 시사한 것”이라며 “아베 총리에게도 확실하게 전해졌다고 믿고 싶다”고 했다.
 일본은 지난 4월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해 5년간 34만명의 외국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일손 부족이 심각한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인을 값싼 ‘단순노동력’으로 취급할 뿐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데까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금융기업 HSBC가 매년 현지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살고 싶고 일하고 싶은 나라’ 조사에서 올해 일본은 33개국 중 32위를 차지했다. 특히 ‘생활에 익숙해지는 용이성’, ‘커뮤니티 허용성’, ‘친구 만들기’ 항목에서 평가가 낮았다.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 등 특정 민족에 대한 차별도 여전하다.
 럭비 대표팀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결국 ‘성과’가 있었기에 ‘원팀’ 정신을 주목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US오픈, 올해 호주오픈에서 우승한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에 대한 시각에서도 이런 이중잣대를 느낀다. 오사카는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닛신식품은 한 애니메이션 광고에서 오사카의 갈색 피부를 하얀 피부로 바꿔 ‘화이트 워싱’ 논란을 빚었다. 일본의 한 개그맨 콤비는 “오사카에게 필요한 것은 표백제”라고 했다. ‘일본 스고이(대단해)론’이 횡행하는 일본 사회에선 타자에 대한 관용은 ‘조건부’다.
 지난 2월 96세로 타계한 도널드 킨 전 컬럼비아대 교수는 평생을 일본 문화 연구에 천착했다. 일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말년에는 일본에 귀화했다. 그는 생전 지인에게 보낸 e메일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내가 우려하고 있는 것은 일본인은 내가 얼마나 일본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말할 때밖에만 귀를 귀울여주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