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국제 환경에서 한·일이 이런 상태로는 안된다, 이것만은 공통인식으로 반드시 공유하고 싶다.”
6일 도쿄대 야스다강당에서 열린 ‘도쿄포럼’에서 일본 최대 경제단체 게이단렌(經團連)의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도쿄포럼은 SK 그룹이 기금을 출연해 설립한 최종현학술원과 도쿄대가 공동 개최한 포럼이다. 이날 오후 ‘비즈니스·경제 세션’에서 한·일 재계 인사들은 악화된 한·일 관계가 양국 경제협력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데 대해 한결같이 우려를 표하면서 한·일 간 ‘미래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일본 측에선 한·일 간 문제는 한국 측이 양국 관계의 기반인 1965년 한·일 기본 조약과 청구권 협정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란 인식도 내비쳤다.
김윤 한·일경제협회 회장(삼양그룹 회장)은 “경제에선 무엇보다 투명성과 예측가능성 등이 중요한데 한·일 간 경제여건은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있다”면서 “한·일 갈등이 계속되면서 항공편 축소와 교류 중단 등으로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일 경제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소재나 부품 장비 등의 서플라이 체인(부품공급망)이 위협받는 것”이라며 “한·일이 하루 빨리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노력하길 바란다”고 했다.
나카니시 회장도 “서플라이 체인이 한·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세계 활동으로 연결된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게 출발점”이라면서 “정치가 어떻더라도 비즈니스는 일관되게 발전할 수 있는 분야에서 좋은 관계를 갖는 게 한·일 관계의 중요한 지점”이라고 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반도체 부문은 한·일이 협력해서 좀더 ‘윈윈(win-win)’하는 협력 관계로 고도화할 수 있다”면서 “한·일이 아시아 등에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미래 반도체 사업을 일으키고 정보통신기술(ICT) 하드웨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일 재계 인사 모두 양국 관계 냉각이 경제 협력의 잠재력까지 손상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는 한편, 급변하는 국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 한·일이 협력할 분야가 적지 않다고 제언한 것이다.
하지만 양국 재계 인사들이 ‘미래 협력’에 방점을 두는 데 대해선 “현 상황에 눈을 감아선 안된다”는 지적이 일본 측에서 나왔다.
미무라 아키오(三村明夫) 일본상공회의소 회장은 “지금까지 정치적 긴장관계에도 한·일 관계가 잘된 것은 안보에서 한·미·일이 협력한다는 신뢰감, 정치가 어떻든 경제는 ‘윈윈’ 관계를 계속했다는 점. 인적 왕래가 매우 빈번했다는 것”이라면서 “유감스럽게도 안전면에서 조건이 상실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일이 상대방이 없으면 생활하기 힘든 관계로까지 발전한 것은 1965년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의 존재가 있어 재계가 안심하고 경제 관계를 강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 기본적인 틀이 삐걱거리는데 큰 불안감을 느낀다”고 했다. 한국 측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국제법 위반”으로 한·일 관계의 기본틀을 뒤집는 것이란 일본 측 논리를 반복한 것이다. 미무라 회장은 강제징용 재판에서 배상 판결이 내려진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 대표 출신 인사다. 그는 “경제인도 정치 얘기를 해야 한다”면서 “자기가 느낀 것을 정부에 솔직히 얘기하고 그것을 되풀이함으로써 어떤 출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포럼에서 최태원 회장은 ‘미래 재단’ 설립을 제안했다.그는 “도쿄포럼을 계기로 다양한 문제의 해법을 찾고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구축해 나가는 협력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한·일이 공동으로 미래 재단을 만들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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