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가 지난 10일 도쿄 한복판에서 열렸다. 일본 우익들의 성지 야스쿠니(靖國) 신사 목전에서 펼쳐진 ‘촛불 행진’에서 ‘아베 반대’의 목소리가 울려퍼진 것이다.
‘야스쿠니 반대 도쿄 촛불행동’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오후 7시 도쿄 재일 한국YMCA 건물 앞을 출발해 야스쿠니신사에서 700m 정도 떨어진 인근 공원까지 약 1.5㎞ 구간에 걸쳐 40여분 간 진행됐다. 행진 대열 맨 앞에는 ‘평화의 등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라는 플래카드가 펼쳐졌다. 경찰들이 대열 주변을 둘러싸는 등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 참가자들은 LED 촛불을 흔들면서 “야스쿠니 노(No)”라는 구호를 함께 외쳤다. “(한국인 희생자들의) 합사(合祀)를 그만둬라”, “아베 반대”, “개헌 반대”, “전쟁 반대” 등의 구호가 잇따랐다.
행사는 올해로 14년째다. 2006년부터 매년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전일인 8월15일 직전 개최돼왔다. 참가자들은 야스쿠니 신사 인근까지 행진하면서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상징인 야스쿠니에 반대하고 평화를 촉구해왔다. 올해는 일본의 경제 보복조치 등으로 인한 한·일 갈등이 격화하면서 아베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사회자는 “지금 한·일 관계가 무너지려 하고 있다”며 “그런데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문제에 마주하지 않고 한국에 거꾸로 화를 내고 있다.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참가자들은 “(일본 기업에 배상을 명령한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지켜라”, “진실과 마주해라” 등의 구호로 화답했다.
매년 행진을 방해해왔던 일본 우익 세력들은 행진이 시작되기 두 세시간 전부터 행사장 인근에 대형 스피커가 장착된 차량들을 배치해 소음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행진 참가자를 향해 “나가라”, “돌아가라”면서 목청을 높였다. 행진 대열이 우익들이 있는 곳을 지나치면서 잠깐 위험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경찰이 끼어들어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익들은 확성기를 통해 “야스쿠니의 영령과 천황(일왕)을 모독하는 이들을 때려죽이자” “계속 돈을 뜯어내는 조선인을 때려죽이자”고까지 했다. 지난해 집회에선 ‘죽이자’는 말은 없엇다.
앞서 재일 한국YMCA에선 이날 오전 ‘지금의 야스쿠니와 식민지 책임’을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최대 문제는 아베 정부가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는 지적들이 잇따랐다.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 도쿄대 교수는 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로 부각된 것은 아베 내각의 한국·조선 인식이라면서 “사실상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사연구가 다케우치 야스히토(竹內康人)는 “가해자가 피해자 같이 행세한다”고 지적했다. 강제동원 소송 원고 측 대리인인 김세은 변호사는 “인권 문제로, 개인의 고통으로 보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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