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 출판계가 모처럼 활기를 띄고 있다. 한 아이돌 그룹 멤버의 솔로 사진집이 이례적인 ‘대히트’를 기록하면서다.
■사진집으로는 이례적인 20만부 판매
10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인기 아이돌 그룹 ‘노기자카(乃木坂)46’ 멤버 시라이시 마이(白石麻衣·24)의 두 번째 사진집 <패스포트>는 지난 2월 7일 발매된 이후 두 달만에 20만부 판매를 기록했다. 앞서 이번 사진집을 낸 출판사 고단샤(講談社)는 사전 예약이 몰리면서 초판을 13만부 발행, 1주일만에 10만4000부가 팔렸다. 고단샤 측은 “여성의 솔로 사진집으로서는 21세기 최대 히트작”이라고 밝혔다.
1만부가 팔리면 ‘히트’라고 말할 수 있는 출판시장에서 솔로 사진집이 20만부가 팔려나간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실제 최근 사진집의 ‘대세’는 일본의 ‘국민 아이돌’인 AKB48이나 아라시(嵐) 등 아이돌 그룹의 사진집이다. 아이돌 그룹의 사진집은 다양한 팬들의 요구를 책 한 권에 담아내는 강점이 있다. 일본 오리콘이 연예인 사진집의 판매부수를 조사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사진 에세이를 제외하고 솔로 사진집이 5위 안에 들어간 것은 <패스포트>가 유일하다.
■여성 독자까지 겨냥
<패스포트>의 이례적인 히트에는 기존 이미지를 깨는 과감성과 여성 독자까지 겨냥한 점 등이 꼽히고 있다.
‘노기자카46’은 2012년 데뷔 이후 청초한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남성 잡지의 그라비아( 여성의 비키니 차림이나 세미 누드 사진)에서도 노출을 삼갔다. 반면 <패스포트>에는 몸매 라인을 강조하는 수영복이나 속옷 차림의 사진이 다수 포함되면서 기존 이미지를 깨뜨렸다.
멋진 여성을 동경하는 여성의 시선에 착목한 점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이번 사진집의 구매층에는 여성이 적지 않다. 여성 연예인 사진집의 구매층은 통상 남성이 90%를 차지하지만, <패스포트>의 구매층은 여성이 30%를 점하고 있다.
시라이시는 노기자키46로 활동하면서도 여성 패션지의 전속 모델로도 활동해 20대 전반을 중심으로 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이번 사진집을 자신들이 동경하는 여성을 특집으로 다루는 여성 잡지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 고단샤는 이번 사진집을 여성지에서 활약하는 사진가들에게 맡겼다. 남성들이 원하는 섹시한 사진들을 넣으면서도, 여성들이 봐도 혐오스럽지 않은 멋스럽고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사진들을 많이 실었다. 아이돌 평론가 나카모리 아키오(中森明夫)는 “남녀 양쪽에 어필할 수 있는 존재가 앞으로 아이돌 사진집의 성공 조건이 될 것”이라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시대와 함께 변화해온 연예인 사진집
연예인 사진집은 때때로 일본 사회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켜왔다.
원래 연예인 사진집은 일본에서 그렇게 많이 팔려나가는 편이 아니었다. 일본에 아이돌이 탄생한 것은 1970년대였지만, 당시만 해도 연예인 사진집은 ‘창조적인 작품’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 들어 시노야마 기신(篠山紀信), 다쓰키 요시히로(立木義浩) 등의 사진가들이 활약하면서 연예인 사진집은 전성기를 맞게 된다. ‘헤어 누드’(체모 노출 누드) 사진집이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165만부 판매를 기록한 미야자와 리에의 <산타페>(1991년), 가와시마 나오미의 <우먼>(1993년·50만부) 등 대히트작이 줄을 이었다. 다쓰키 요시히로는 “한창 아름다울 때의 여성과, 이를 보고 싶다는 남자들의 욕구가 충족되면서 히트를 쳤다”고 밝혔다.
2000년대 들어선 아이돌 그룹인 모닝 무스메나 AKB48 등이 등장하면서 연예인은 ‘친근한 존재’로 변모했다. 시대를 열광시키는 ‘솔로’ 연예인이 부재한 가운데 연예인 사진집도 팬들의 다양한 관심에 부응하는 내용으로 변화했다. 후카다 교코( 深田恭子 )는 지난해 남성과 여성용으로 사진집 2종을 출판하기도 했다.
1990년대만 해도 연예인 사진집이 20만부를 돌파하는 것은 진기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쉽게 화상을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사진집의 인기는 퇴조했다.
이런 시대에 시노하라의 사진집이 대히트를 친 또다른 이유로는 ‘소유감’이 거론된다. 고단샤는 이번 사진집에 실린 사진 40컷을 인터넷에 차례로 공개하면서 관심을 불러모으는 마케팅을 펼쳤다. 인터넷 화상으로는 ‘소유하고 있다는 감각’이 없어서 ‘종이 형태’로 소유하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국제 > 김진우의 도쿄 리포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테러방지법’과 닮은 꼴? 일본 ‘공모죄’ 법안 논란 (0) | 2017.05.24 |
---|---|
K팝 스타들에 일본팬 “야바이(굉장하다)” “사랑해”... ‘케이콘’ 열기 가득 (0) | 2017.05.21 |
"칼빈슨은 어디 있어?" (0) | 2017.05.09 |
“자민당은 개헌 위해 태어난 정당” 일본 최대 우익단체 ‘개헌 집회’ 가보니 (0) | 2017.05.03 |
할머니 할아버지 계신 시골로...‘마고(孫)턴’ 늘어나는 일본 (0) | 2017.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