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9시40분 사이타마(埼玉)현 지치부(秩父)시 우라야마(浦山)에서 경승용차가 지방도로를 벗어나 약 15미터의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운전을 하던 가시와기 가이도(柏木海渡·18)가 숨지고, 동승했던 또래 친구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 현장은 편도 1차선의 직선도로로 경승용차는 우측에 있는 가드레일을 뚫고 절벽 밑으로 떨어졌다. 경찰은 사고 현장 근처에 직경 50㎝의 돌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낙석이 차 앞부분에 부딪치면서 운전석의 에어백이 열려 운전을 방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사고를 당한 4명은 중학교 동창으로 “심령 스팟을 보러 가는 도중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사고 현장 부근은 인터넷상에 ‘심령 스팟’으로 소개된 곳이다.
■‘심령 스팟’이 뭐길래
‘심령 스팟’은 귀신이나 유령이 출몰한다거나 기괴한 현상이 목격되는 장소를 말한다. 괴담이나 오컬트 현상을 유독 좋아하는 일본에선 TV 방송이나 인터넷 등에서 이런 심령 스팟에 대한 목격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으로 치면 ‘자유로 귀신’ 비슷한 얘기가 널리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심령 스팟은 10대 소년이나 젊은이들이 ‘담력 시험’을 하기 위해 찾기도 한다. 전국의 심령 스팟을 찾아다니는 매니아들도 많다. 인터넷에는 귀신을 목격했다거나 기묘한 사고가 일어났다고 하는 전국 각지의 ‘심령 스팟’을 모아놓은 ‘전국 심령 지도’ 사이트나 심령 스팟을 직접 찾아가 ‘검증’하는 사이트도 있을 정도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일본 소설가 미야베 미유키의 장편 추리소설 ‘모방범’에도 산으로 둘러싸인 군마(群馬)현의 별장 지대에 ‘심령 스팟’을 보러갔던 등장인물이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당하는 얘기가 나온다.
문제는 ‘심령 스팟 탐사’라는 명목으로 건물에 무단침입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를 보는 건물 주인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빈집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 일본에선 지자체들이 대응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난 1월 가나가와(神奈川)현 이세하라(伊勢原市)시의 한 목조건물이 불에 타 전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건물은 10년 전 폐업한 러브호텔로, 최근 심령 스팟으로 알려지면서 불법 침입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이 건물을 ‘심령 스팟’으로 알리면서 “숨바꼭질을 했다” “진짜 쫄았다” 등의 글이 잇따랐다. 이 때문에 인근 주민들이 “밤에 ‘꺄악꺄악’ 외치는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 잘 수가 없다” 등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괴담의 나라’ 일본
심령 스팟이 반드시 ‘ 원념’(怨念)는 아니다. 과거 사고가 있었다든가, 절이나 신사, 묘지가 있었다든지 하는 곳이 심령 스팟으로 알려지곤 한다. 특히 심령 스팟으로 묘지가 많은데, 이는 중세 헤이안 시대부터 유명한 인물들의 묘가 지진도 나지 않았는데 저절로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기록돼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일본에는 ‘야오요로즈노카미(八百万の神)’라는 말이 있다. ‘800만의 신이 사는 나라’란 뜻으로, 그만큼 많은 신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신이 만물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 일본인에게 ‘괴담의 세계’는 일상 생활과 무척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괴담도 많다. 에도 시대 한 관리가 당시의 기이한 이야기를 수집해 기록한 ‘미미부쿠로(耳袋)’라는 괴담집은 ‘소문을 모아 수집한 이야기 주머니’라는 뜻으로 총 10권에 1000편의 기담이 담겨 있다.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 미스테리 소설들은 이 ‘미미부쿠로’에서 소재를 가져온 괴담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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