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게츠쿠’라는 시간이 있다. 월요일 밤 9시다. 월요일(月曜日)의 ‘게츠요비(げつようび)’와 9시(9時)의 ‘쿠지(くじ)’ 각각의 앞글자를 따왔다.

  게츠쿠는 일본 민영방송 후지TV에서 월요일 밤 9시에 방영되는 드라마를 통칭하는 말이다. 

 게츠쿠는 일본 TV 방송사에 남을 히트작을 무수히 냈다.  젊은이들의 유행과 연애를 생생하게 그려내 한때 “월요일 밤 거리에서 OL(Office Lady·여사무원)이 사라진다”고 할 정도로 사회 현상이 됐다. 마치 1995년 우리나라에서 <모래시계>가 방영되는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일찍 귀가해, <모래시계>가 ‘귀가시계’로 불리기도 한 것과 비슷하다. 

 게츠쿠 제 1호는 1987년 4월 방영된 <아나운서 이야기>로 젊은 층의 유행과 연애를 그려내 주목을 모았다. 1988년  <너의 눈동자를 체포한다!>에선 화려한 의상이나 가게가 화제가 되면서 ‘트렌디 드라마’라는 용어가 생겼다. 

 게츠쿠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든 것은 1991년 방송된 <도쿄 러브스토리>와 <101번째 프로포즈>가 엄청난 인기를 모으면서다. <도쿄 러브스토리>의 경우 마지막 회 시청률이 32.3%, <101번째 프로포즈>는 36.7%를 기록하였다. <101번째 프로포즈>는 우리나라에서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게츠쿠는 그 후에도 <한지붕 아래>, <아스나로 백서>, <롱 바케이션>, <러브 제너레이션> 등 인기 드라마를 제작해 지위를 굳혔다. 

 게츠쿠가 탄생시킨 스타들도 적지 않다. 신인 배우가 게츠쿠 주인공으로 발탁돼 깜짝 스타가 되기도 한다. 

 게츠쿠의 간판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일본 최고의 스타 기무라 다쿠야(木村拓哉)다. <아스나로 백서>에서 주인공 친구로 발탁된 이래 <롱 바케이션>, <러브 제너레이션> 등이 대히트를 치면서 ‘게츠쿠’하면 ‘기무타쿠’가 당연히 연상됐다. 특히 기무라 타쿠야가 청바지 차림의 검사로 나온 <HERO>는 역대 최고 시청률인 34.1%를 기록했다. 

 게츠쿠는 이후에도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 천재 물리학자가 사건을 해결하는 <갈릴레오> 등 히트작을 이어갔다.

 게츠쿠가 인기를 모을 수 있었던 이유로는 당시 젊은이들의 생활 방식을 민감하게 포착했다는 점이 꼽힌다. 도시 풍경 속에서 젊은 층의 심정을 생생하게 그려냈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메시지성도 담고 있었다. 평론가 나카야마 유스케는 “설정은 거짓 같지만, 등장인물의 연애나 결혼은 리얼리티가 있고, 당시의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었다. 자유롭고 자립한 여주인공이 보람 있는 일과 애절한 사랑을 하고, 즐겁게 살아간다. 여성이 생생하게 빛나고 있었다”고 15일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하지만 게츠쿠는 최근 10년 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09년부터는 <갈릴레오2>와 기무라 타쿠야 주연 드라마를 빼곤 시청률 20%를 넘는 드라마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사분기의  <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고 말 거야>부터 5 시즌 연속으로 평균 시청률이 한 자릿수였다. 가장 최근작인 지난 1사분기의 <갑작스럽지만, 내일 결혼합니다>는 역대 최저시청률인 6.7%를 기록했다.  

 최근 일본 TV 드라마가 ‘겨울’을 맞고 있다고 할 정도로 전반적으로 시청률이 부진한 상황이지만, 게츠쿠의 부진은 특히 눈에 띈다. 다른 방송국에선 <가정부 미타>(2011년·니혼TV), <한자와 나오키>(2013년·TBS) 같은 대히트작이 나왔고, 지난해 <도망가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TBS)도 최고시청률 20%를 넘으면서, 후지TV가 장기라 할만한 연애물에서도 선두를 빼앗긴 모양새다. 마케팅 평론가인 우시쿠보 메구미는 “현대의 젊은이들은  연애는 귀찮다고 하는 의식이 있고, 옛날 방식의 연애에는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게츠쿠는 이번 4월 30주년을 맞았다. 후지TV는 17일부터 시작하는 123번째 게츠쿠에 연애물이 아닌 미스테리물을 준비하고 있다. 제목은 <귀족탐정>. 일본 인기 아이돌 그룹인 아라시(嵐)의 아이바 마사키(相葉雅紀·34)가 주연을 맡았고, 영화 <러브레터>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나카야마 미호(中山美穗·47)가 조연으로 나오는 등 출연진이 화려하다. 나카야마 미호는 게츠쿠에서 여주인공을 7번이나 맡았다. 

 한때 게츠쿠는  지금 일본의 유행을 알 수 있는 통로 였다. 

 일본 드라마 입문자라면 역대 시청률 톱 10에 들어간 게츠쿠를 찾아 봤던 경험도 있을 것이다. 

 필자 같은 경우도 기무라 타쿠야의 출연작부터 시작해서 <한지붕 아래> <아스나로 백서> 등을 찾아 봤다. 지금은 일본 드라마 가운데 연애물은 비슷비슷해서 잘 찾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심야식당>, <고독한 미식가> 같은 먹방 드라마나 <기치조지만이 살고 싶은 동네입니까> 같은 드라마라고 애매한 드라마를 보는 편이다. 아니면 일본 위성방송인 WOWWOW의 추리물이나 <구구는 고양이다> 같은 드라마를 보거나. 물론 시간이 있을 때지만. 

 오늘밤 9시 <귀족탐정>이 시작된다. 과연 후지TV는 게츠쿠의 영광을 되살릴 수 있을까.

Posted by fontif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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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더쥐 2017.08.06 0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츠쿠의 드라마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정보도 많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옛 드라마 <아나운서 이야기>도 한번 보고 싶어졌고, <귀족탐정>은 어떤지 궁금해졌습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