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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무라카미 하루키 “역사는 아무리 구멍을 파고 감춰도 나온다”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70·사진)가 “역사는 아무리 구멍을 파서 감춰도 나올 때는 나온다”고 밝혔다.
 그는 22일자 도쿄신문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우리는 역사라는 것을 짊어지고 살고 있는데, 그것은 아무리 감춰도 반드시 밖으로 나온다”라며 “역사는 자신들이 짊어져야 하는 집합적인 기억”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태어난 때는) 국가의 논리에 따라 커다란 전쟁이 벌어져 사람들이 서로를 죽였던 생생한 기억이 아직 공기에 남아있던 시대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전쟁이 지금도 상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다. 우리가 단단한 지면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실은 물렁한 진흙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직후인 1949년 태어났다.
 무라카미는 그동안 작품이나공개 발언을 통해 일본 사회가 침략의 과거사를 마주 봐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최근작 <기사단장 죽이기>에선 1937년 중국 난징(南京) 대학살에 대해 “10만 명이든 40만 명이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살해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 프랑스에서 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자기 나라에 좋은 역사 만을 젊은 세대에 전하려는 세력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소설에서 더듬듯이 신중하게 다뤄왔던 마음 밑바닥의 이매망량(온갖 도깨비)과 어둠의 세계가 지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든가 인터넷 구조의 뒷면으로부터 우리들의 표면 세계로 서서히 나오고 있다”며 “마음 속 어둠의 세계에 가라앉은 폭력성의 표식 같은 것을 일상적인 일에서 느끼고 있다. 과거로부터 그런 것이 살아나오는 것 같은 공포감을 느끼는 일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무라카미는 지난 10일 발매된 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 6월호에 게재된 ‘고양이를 버리다-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말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통해 부친이 제국주의 시절 징병돼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1938년 군에 징집된 아버지는 중국에 파견된 소속 부대에서 포로들을 처형한 경험을 내게 털어놓았다”며 “군도(軍刀)로 사람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잔인한 광경은 말할 것도 없이 어린 내 마음에 강렬하게 낙인으로 찍혔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불쾌한,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것이 있더라도 사람은 이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역사라는 것의 의미는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