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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의 ‘소리 나지 않는 신호등’...변경 요구 잇따라

 “삐요삐요”
 일본에서 횡단보도를 건널 때 신호등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가운데 하나다.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뀐 것을 알려주는 것으로, 이런 ‘음향식 신호등’은 일본 곳곳에 적지 않게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 음향식 신호등이 소리가 나지 않는 시간대가 있다고 변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장애인단체 등에서 나오고 있다고 NHK가 22일 전했다.
 계기가 된 것은 지난해 일어난 한 사고였다고 한다.
 지난해 12월7일 오전 4시30분쯤. 도쿄 도시마(豊島)구 JR 고마고메 역 근처 횡단보도에서 64세 남성이 왼쪽에서 오는 승합차에 치여 사망했다. 이 남성은 오른쪽 눈이 실명, 왼쪽 눈도 거의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으로 신호등이 빨간불인데도 횡단보도를 건너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횡단보도에는 음향식 신호등이 설치돼 있었지만, 오후 7시부 터 오전 8시 사이에는 주변에 대한 배려 등으로 소리가 나지 않는 구조로 돼 있었다고 NHK는 전했다.
 음향식 신호등은 동요의 멜로디나 새 소리 등으로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뀐 것을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 3월말 현재 전국에 2만4000개 정도가 설치돼 있는데, 전국 신호등의 약 11%에 해당한다.
 그러나 일본시각장애인회연합에 따르면 야간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해 소리가 나는 것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인 음향식 신호등이 상당수다. 24시간 소리를 내는 신호등도 있지만, 대규모 역 근처 등에 한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장애인단체에선 음향식 신호기가 소리가 나지 않는 시간대가 있는 것을 재검토해달라는 성명을 잇따라 내고 있다. 일본 시각장애인회 연합과 도쿄 시각장애인 복지협회는 “소리 정보는 필수로, 유도음이 없는 경우는 위험을 각오하고 도로를 건널 수밖에 없다”면서 어떤 형태로든 음향신호등이 24시간 소리를 내도록 검토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가나가와현 시각장애인 복지협회는 “시각장애인 중에는 혼잡을 피하기 위해 이른 아침이나 야간에 통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시각장애인이 안전하고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 정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소리가 나는 시간의 연장이나 음량은 인근 주민의 이해도 필요해 주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장애인의 교통 안전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일본시각장애인회연합의 구도 쇼이치 종합상담실장은 NHK에 “생활하면서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 플랫폼과 횡단보도”라면서 “신호등의 소리가 울리지 않을 때는 매우 불안하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어떤 의미에서 목숨을 거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24시간 소리가 울리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소리를 멈추는 일은 피했으면 한다”면서 “버튼을 누를 때 소리가 반드시 나오거나 야간이나 이른 아침은 소리를 낮게 하는 등의 대책을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