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거꾸로에요. 제가 케이팝을 좋아하면서 한국 패션이나 화장품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 다음에 엄마까지 따라 좋아하게 됐어요.”
지난 18일 ‘KCON 2019 재팬(케이콘)’이 열린 지바(千葉)현 마쿠하리(幕張) 멧세 국제전시장에서 만난 와타나베 가렌(渡邊華戀·16)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채 말했다. 방금 전까지 전시장에 ‘깜짝’ 등장한 케이팝 아이돌 그룹 ‘원어스’의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던 참이었다. 함께 온 친구 2명과 어머니 와타바네 미나(渡邊美奈)씨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미나씨는 “케이팝 그룹들은 댄스가 대단하다. 그 전에는 잘 몰랐는데 지금은 딸이랑 같이 보러 다닌다”고 했다. ‘겨울연가’ 등 한국 드라마 붐을 일으킨 한류 1세대 일본 주부들과는 달리 딸의 영향을 받아서 3차 한류 대열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2000년대 한국 드라마로 시작된 1차 한류, 2010년 케이팝으로 확산된 2차 한류에 이어 3차 한류는 일본 10대들을 중심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케이팝뿐만 아니라 한국 화장품, 음식, 패션 등 일상 속 한류로 진화하고 있다.
와타나베 가렌은 앞머리는 한국에서 유행하는 시스루 뱅 스타일을 하고, 입술에는 레드립 화장을 했다. 홍대 등 한국의 유행 중심지를 둘러보기 위해 한국을 4차례나 찾았고, 한국어 공부도 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악화된 한·일 관계에 대해선 “예능과 정치는 별개”라고 말했다. 미나씨도 “TV에 한·일 관계 뉴스가 나오면 신경을 쓰는 부모들이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17~19일 사흘 간 진행된 케이콘은 악화된 한·일 관계와 달리 갈수록 저변을 넓혀가고 있는 3차 한류의 ‘현재’를 보여주는 행사였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 컨벤션에는 미용, 패션, 음식, 패션, 음악 등 한국 대중문화를 주제로 역대 최대 규모인 236개 부스와 267개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행사장은 일본 내 한류를 이끌고 있는 10~20대 여성들로 북적거렸다. 한국 아이돌 복장을 하고 온 열혈 팬들은 물론, 한국식 화장이나 패션으로 치장한 중·고교생이나 젊은 여성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케이콘 참여 관객 중 1020 세대는 2016년 전체 관객의 39%에서 지난해 69%로 증가했다. 특히 10대 관객의 경우 지난 2년 간 10% 수준에서 41%로 성장했다고 주최 측인 CJ ENM은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행사에선 ‘케이콘 걸즈(GIRLS)’ 프로그램이 새롭게 선을 보였다. 한국 인기 걸그룹과 일본 AKB48 멤버, 유명 뷰티 크리에이터가 참여해 최신 한국 뷰티·패션 트렌드에 대한 토크쇼와 라이브 퍼포먼스 등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됐다.
지난 18일 오후 2시30분 인기가수 청하가 무대 위에 등장하자 여기저기서 “너무너무 예쁘다” 등의 감탄이 터져나왔다. 이날 행사에서 관객들은 사전 질문지를 통해 “아이섀도우는 뭘 쓰냐”, “평상시에는 뭘 입나” 같은 질문들을 하면서 한국 뷰티·패션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앞서 한·일 합작그룹 ‘아이즈원’이 지난 17일 화장품 브랜드 ‘컬러그램 톡’ 부스를 방문한 뒤에는 현장 판매 분량이 매진되기도 했다.
이번 컨벤션에는 한국 중소기업 50개사가 부스를 마련했다. 이들 가운데 31개사가 뷰티, 10개사가 패션 관련 회사였다. 스마트폰 케이스에 메이크업 팔레트를 일체화한 ‘필릿(FILLIT)’을 선보인 원데이원커뮤니케이션스 김창희 대표이사는 “일본이 4, 5년 전만 해도 자국 브랜드만 썼는데 지금은 한국의 색조화장도 유명하고, 기획력이 있어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스타트업 기업이니까 일본에 수출을 먼저 해서 다른 곳으로도 진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후 6시 컨벤션이 끝나자 상당수 관람객들은 그대로 바로 옆 ‘엠카운트다운’ 콘서트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18일 콘서트 현장에서 관객들은 “각코이이(멋지다)”, “가와이(예쁘다)’를 연발하면서 야광봉을 흔들고 함성을 질렀다. 아기를 안고 몸을 들썩이는 여성도 있었다. 콘서트 무대에는 3일 간 트와이스, 아이즈원, 뉴이스트, 몬스타 엑스 등 인기 케이팝 아이돌 29팀이 등장했다. 콘서트는 지난 3월 예매 개시와 동시에 전석 1만1000석이 매진을 기록했다.
케이콘은 2012년부터 미국, 호주 등에서 개최됐고 일본은 2015년 처음 열렸다. 이번 행사에는 3일 간 역대 최대규모인 8만8000명이 몰렸다. 처음 열린 2015년의 1만5000명에 비해 5배 이상 성장했다고 CJ ENM 측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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