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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김진우의 도쿄 리포트

'82년생 김지영' 일본서도 통했다

  "뿌리깊은 성차별 등 일본인도 공감할 내용"

  북 토크 등으로 바람몰이

  한달새 5만부 넘게 팔려

  내달 저자 일본 방문 예정

 “왜 여성은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이 답해야만 할까요.”
 지난 18일 저녁 도쿄 시모기타자와(下北澤)에 자리한 서점 ‘B&B’는 열기를 띠고 있었다.70㎡ 정도 될까 싶은 작은 공간을 메운 이들은 함께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음을 터뜨렸다. 때때로 한숨을 쉬기도 했다.
 한국에서 100만부 넘게 팔린 조남주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일본어판 간행을 계기로 마련된 ‘82년생 김지영-베스트셀러가 시사하는 것’이라는 ‘북 토크’였다. 행사에는 100명 가까운 이들이 찾았다. 간이의자에는 빈틈이 없었다. “이 서점에서 개최하는 행사에서 이례적일 정도로 초만원”(서점 관계자)이었다.
 이날 행사에는 일본어판 번역자인 사이토 마리코와 서평가인 구라모토 사오리가 대담자로 나섰다.
 사이토는 우선 한국과 일본 독자의 반응을 소개했다. “한국에선 ‘화가 났다’는 독자평이 많은데, 일본에선 ‘끝까지 읽는 게 괴롭다’거나 ‘책을 읽다가 울어버렸다’는 독자평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한국에서 이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다”면서 인기의 배경에 작품 자체의 힘 외에도 ‘#미투(Me too)’ 운동 등 젠더 의식과 페미니즘 운동의 고양을 들었다. 사이토는 “(소설에는) 모두가 보지 않으려고 한 부분이 나온다”면서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 실제 있을 수 있는 얘기니까 남성들도 안달복달한다”라고 했다. 
 구라모토는 소설 속 상황이 “매우 잘 이해된다”고 했다. 그는 도쿄의대의 여성수험생 감점, <주간SPA!>의 ‘성관계 쉬운 여대생 순위’ 기사 등의 사례를 들면서 “1980년대 얘기라고 생각했던 게 지금 일어나고 있다”면서 “소설 속 디스토피아가 현실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82년 김지영>이 일본에서도 인기를 얻는 이유에는 일본에서도 성차별이 뿌리깊은 상황이 거론된다. 일본 독자들 사이에선 “소설 속 상황이 일본에도 맞아떨어진다”는 반응이 많다. 구라모토는 다만 “한국은 변화가 빠르다. 예전에 한국이 일본 책을 수입했다면 지금은 역전됐다”면서 “일본 여성은 한국 여성보다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진 질문 시간. 마이크를 잡은 이들에게 ‘질문’은 곧 ‘자신의 얘기’이기도 했다.  
 한 남성은 “책을 읽고 여성들에게 나도 모르는 사이 상처를 주지 않았나 생각했다”면서도 “앞으로 회식 등 접촉할 기회를 아예 갖지 말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다른 30대 남성은 “여성 동료들이 30대 전후로 아이를 낳고 일하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책에 그런 동료들의 모습이 그대로 나왔다”면서 “남성들에게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한 30대 여성은 “소설을 한국인과  사귀고 있는 친구에게 추천해줬는데, 책을 읽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50대 여성은 “성희롱이 아무렇지도 않던 시대를 보냈는데 지금도 그런 게 참 이해가 안된다”면서 “우리 세대가 (성희롱을) 적당히 넘어간 게 잘못했나 싶다”고 말했다.
 지난 12월초 출간된 일본어판 <82년생 김지영>은 한국 소설로선 이례적일 정도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21일 지쿠마쇼보(筑摩書房)에 따르면 최근까지 5쇄, 5만7000부를 인쇄했다. 지쿠마쇼보 측 담당자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각 서점 판매 순위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면서 “한국 소설에 이렇게 많은 관심이 모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전했다. <엄마를 부탁해> 등 그간 한국에서 ‘밀리언셀러’에 올랐던 소설이 일본에서도 번역 출간됐지만, <82년생 김지영> 수준의 반향은 얻지 못했다. 일본 독자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지쿠마쇼보 등은 다음달 19일 조남주씨를 직접 초청해 독자들과의 만남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