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 사우디아라비아 국왕(81·사진)이 한 달에 걸친 아시아 순방을 하고 있다. 1500명에 이르는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모처럼 외국 방문에 나선 살만 국왕의 ‘여행 목적’을 놓고 여러 분석이 나온다. ‘탈석유’ ‘탈미국’을 노리는 사우디의 전략적 변화를 보여준다는 시각과 함께, 아들 무함마드 빈살만 부왕세자의 개혁정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살만은 지난달 26일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중국, 일본, 몰디브, 요르단을 차례로 찾고 있다. 오는 12일부터 15일까지는 일본을, 15일부터 18일까지는 중국을 방문한다. 사우디 국왕의 일본 방문은 46년 만이고, 중국 방문은 2006년 압둘라 국왕 시절 이후 11년 만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사우디를 찾았다. 살만으로서는 2015년 1월 즉위 이래 처음으로 중동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이번 순방 중 중국에 들를 것으로는 예측됐으나, 양국 정부는 8일에야 방문 사실을 확인하고 일정을 공개했다.
살만은 일본에서 아키히토 일왕을 만나고, 아베 총리와 만찬을 하며 경제협력을 논의한다. 중국에는 지난해 무함마드 부왕세자가 한 차례 방문해 주택건설과 물 프로젝트 등 15건의 예비협정을 맺었다. 살만은 이번에 시 주석과 만나 경제·군사적 협력을 전방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국왕이 직접 나서서 아시아 순방외교를 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여기에는 사우디가 느끼는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 사우디는 정부 세입의 70%를 차지하는 유가가 떨어져 재정위기를 겪고 있다. 아버지를 등에 업은 사우디의 젊은 실세 무함마드는 세계 최대 규모가 될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기업공개를 결정했고, 지난해 4월에는 ‘탈석유’ 경제개혁 계획인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이번 순방에서 살만은 아들의 계획에 힘을 실어주면서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의 협력 길을 열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가 이끄는 걸프협력회의(GCC)와 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아람코 주식의 5%를 아시아에서 팔아, 그 재원을 신흥시장에 투자할 계획이다.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인 중국 시장에서 1위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도 관건이다.
하지만 이번 순방에는 경제협력 그 이상이 존재한다. 사우디는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이란 핵합의 등을 놓고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시리아·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서 이란의 입김이 강해지며 ‘노쇠하고 낙후된 걸프의 왕국’으로 전락하면서 역내 패권도 놓칠 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예측이 불가능해 미덥지 않다. 미국에 의존해온 사우디가 중국에 손을 내밀며 전략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우디는 예멘 공격 때 중국의 무인 항공기를 사용하는 등 중국산 무기 도입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 청두(成都)에서 연합군사훈련을 하기도 했다. 살만의 중국 방문은 사우디가 미국에 다른 ‘옵션’을 갖고 있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는 기회다. 중국과 이란의 밀착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알자지라방송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은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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