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본의 종전기념일(패전일)인 15일 전몰자 추도식에서 6년 연속으로 일본의 가해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이날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지는 않았지만 대리인을 통해 공물료를 납부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도쿄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고 NHK가 전했다. 하지만 과거 일본 총리들이 언급했던 ‘가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전후 우리나라(일본)는 평화를 중요시하는 나라로서의 길을 걸어왔고 세계를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힘써왔다”며 “우리들은 역사와 겸허하게 마주하면서 어떤 시대에도 이러한 부동(不動)의 방침을 일관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과제를 진지하게 다루며 만인이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거듭해왔다”며 “지금을 사는 세대, 내일을 사는 세대를 위해 국가의 미래를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총리들은 1994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이후 전몰자추도식에서 “일본이 아시아 국가에 큰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면서 가해 책임을 언급해왔다. 아베 총리 역시 2007년 1차 정권 당시에는 “많은 나라들에 커다란 손해와 고통을 줬다. 전쟁의 반성에 입각해 부전(不戰)의 맹세를 견지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2012년 12월 2차 아베 내각이 발족한 이후 올해까지 6년째 ‘반성’과 ‘부전’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이에 따라 아베 총리는 재집권 이후 줄곧 종전일 추도식에서 일본의 가해 책임을 외면했다는 지적을 받게 됐다.
반면 내년 4월말 퇴임 전 마지막으로 추도식에 참석한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4년 연속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일왕은 “전후에 길게 이어지는 평화의 세월을 생각하면서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전체 국민과 함께 전쟁터에서 흩어져 전화(戰禍)에 쓰러진 사람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애도의 뜻을 표하고, 세계 평화와 우리나라가 한층 더 발전하길 기원한다”고 했다.
앞서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대리인인 시바야마 마사히코(柴山昌彦) 총재특별보좌를 통해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의 일종인 다마구시(玉串)료를 자비로 냈다고 NHK가 전했다. 아베 총리가 2012년 말 총리 취임 후 패전일인 8월15일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은 것은 6년 연속이다.
시바야마 총재특별보좌는 이날 기자들에 대해 “작년에 이어 자민당 아베 신조 총재를 대신해 참배했다”면서 “총재로부터는 ‘확실히 참배해달라. 오늘 가지 못해 죄송하다’라는 말이 있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제 2차 아베 내각이 발족한 1년 뒤인 2013년 12월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지만 그 이후에는 야스쿠니신사를 찾지 않고 있다. 패전일에는 매년 자비로 공물료를 납부하고 있다.
한편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여야 의원 50여명이 이날 야스쿠니신사를 집단 참배했다. 사토 마사히사(佐藤 正久) 외무 부(副)대신, 미즈오치 도시에(水落敏榮) 문부과학 부대신 등 아베 내각 각료들도 야스쿠니신사를 찾았다. 아베 총리의 최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대행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재의 아들인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자민당 수석부간사장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근대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서 숨진 약 246만6000여 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 등 태평양 전쟁 A급 전범 14명도 합사돼 있다.
태평양 전쟁 중에는 일왕을 정점으로 한 국가 신도(神道)의 중심으로 전사한 군인들을 신으로 모시며 전쟁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고, 지금도 전쟁 책임을 부인하는 보수우익 세력들의 ‘성지’로 자리잡고 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전쟁 중 희생당한 조선인 2만1000명이 합사되어 있고, 이름을 빼달라는 한국 유족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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