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비판하고 일본의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을 촉구했던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전 일본 관방장관이 지난 26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힌다. 1951년 25세 때 교토(京都)부 소노베(園部町)정 의원에 당선된 뒤 정장(町長), 교토부 의원, 부지사를 거쳐 57세 때인 1983년 중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의원으로선 늦깎이였지만, 풍부한 경험과 폭넓은 정보력, 예리한 발언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자민당이 정권에 복귀한 1994∼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연립 내각에서 자치상 겸 국가공안위원장, 1998∼1999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내각에서 관방장관을 맡았다. ‘과거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사죄’ 내용이 담긴 김대중·오부치 선언 당시 관방장관이었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정권(2000~2001)에서 자민당 간사장을 역임한 그는 총리 후보로 떠올랐으나 당시 경쟁자였던 아소 다로(麻生太郞) 현 부총리가 부라쿠민(部落民·봉건제도 시절 하층민) 출신임을 폭로해 후보직을 사퇴했다.
정치권에선 ‘저격수’로도 불린 반면, 평등과 평화 등 일본 전후 민주주의의 가치를 중시하는 자세를 평생 관철했다. 일본이 패전한 1945년 보병으로 복무했던 경험이 평생 ‘반전(反戰)’의 원점이라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그는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일동포 등 영주외국인에 대해 지방선거권 부여를 추진하기도 했다. 민단신문에 따르면 그는 “한반도에서 끌려온 사람들이 학대받는 모습을 몇 번이나 봤다. 내게는 상당히 험한 꼴을 보게 했다는 죄악감이 있다. 그런 것을 우리들이 살아있는 동안 불식시켜 한반도와의 신뢰관계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정계를 은퇴한 뒤인 지난 2014년 재일동포단체가 개최한 강연에서 “정치인들은 식민지화가 한반도를 할퀸 자국과 전쟁이 중국에 남긴 상처를 겸허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베 내각이 헌법 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한 것에 대해 “다시 전쟁의 길을 걷는 것은 폭거”라고 비판했다. 관방장관 재임 중 야스쿠니(靖國)신사에 합사돼있는 A급 전범을 분사하고 야스쿠니신사를 특수법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전쟁 체험으로부터 반전·호헌(護憲)의 길을 걸어간 신념의 정치가였다. 보수 정치가의 양심 그 자체”라고 고인을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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