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인한 가해의 역사를 뒤집으려는 움직임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런 ‘역사 역주행’이 과거와 달리 국내는 물론 국제 무대로까지 보폭을 넓혀 거리낌없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우익 성향의 민간단체들이 ‘돌격대’ 역할을 하고, 일본 정부가 ‘뒷배’를 봐주는 ‘민관(民官) 일체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노골화하는 일본의 ‘역사 역주행’
일본 우익단체들의 ‘역사 뒤집기’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본 국내는 물론 외국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국제기구를 대상으로 한 압박전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열린 지난달 중순 스위스 제네바 현지에선 일본 우익단체들이 치열한 로비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의에선 일본 정부에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권고하는 잠정보고서가 채택됐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재일한국인 김창호 변호사는 “일본 우익들은 국내는 이미 평정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제 본격적으로 해외에서 역사전을 치르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내에 잇따라 설치된 위안부 기림비에 대해선 현지 일본인들이 만든 ‘역사의 진실을 요구하는 세계연합회(GAHT)’가 철거 공작을 벌이고 있다. 일본내 우익 인사들도 발기인으로 참가, 2014년 설립된 이 단체는 현지에서 위안부를 부정하는 홍보물을 배포하거나, 기림비 철거 소송을 내고 있다. 이 단체는 캘리포니아주 글린데일에 설치된 기림비 철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 패소에 이어 최근 상고심이 기각됐다.
일본 정부가 최근 왜곡 시도를 하고 있는 ‘군함도(하시마)’와 관련해선 ‘산업유산국민회의’가 홍보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이 단체 홈페이지에는 조선인 강제 노역과 희생 사실을 부정하는 ‘옛 군함도 주민들’의 증언이 올라와 있다.
■우익단체가 ‘앞장’, 일본 정부가 ‘뒷배’
일본 정부도 이런 우익단체들의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다.
메라 고이치(目良浩一) GAHT 대표는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송에는 이기지 못했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가 ‘무관여’에서 ‘적극 참가’로 바뀌었다”면서 “장기적으로 우리들의 운동은 성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일본 정부는 소녀상 상고심이 기각되기 전 “상고가 인정돼야 한다”는 의견서를 미 연방재판소에 보냈다.
일본 정부의 노골적인 편들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의회가 지난 11월 위안부 기림비 설치 수용을 결의한 데 대해 “일본 정부의 입장과 양립하지 않아 매우 유감”이라며 샌프란시시코 시장에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요시무라 히로후미(吉村洋文) 오사카시장은 샌프란시스코시가 시의회 결의를 수용하자 자매도시 결연을 취소하겠다고 밝히는 등 지방자치단체까지 나서고 있다. 앞서 기림비 설치가보류된 미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시즈노카 다카시(篠塚隆) 총영사는 지난 6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성노예의 증거가 없고, 돈을 받은 매춘부들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본 우익단체가 앞장서고, 일본 정부가 밀어주는 역사 역주행 움직임은 갈수록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지난달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막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이를 두고 우익들은 “민관 일체에 의한 반격”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측근이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지난 10일 “전후 72년이 됐는데도, 72년 전 역사를 끄집어내 비판하고, 그래서 국제사회 속에서 때로는 뭇매를 맞는다. 이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밝혔다.
야마구치 도모미(山口智美) 미 몬태나주립대 교수는 도쿄신문에 “일본 정부는 역사수정주의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대사관이나 영사관도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유네스코의 경우처럼 우익 단체가 움직이는 게 반드시 역효과를 낸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앞으로 비슷한 움직임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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