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제/김진우의 도쿄 리포트

좌우 어딜 봐도 ‘다나카 히로카즈’...도쿄 시부야에 모인 까닭은

 “처음 뵙겠습니다. 다나카 히로카즈입니다.”
 “반갑습니다. 다나카 히로카즈입니다.”
 지난달 28일 저녁 도쿄 시부야의 한 음식점이 ‘다나카 히로카즈(田中宏和)’들로 북적거렸다. 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전부 다나카 히로카즈다. 이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87명이나 모였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기후(岐阜)현에서 태어나 처음 신간센(新幹線)을 타고 왔다는 75세 최고령에서부터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어머니와 함께 왔다는 중 2학년생까지 이날 모인 다나카 히로카즈들은 사는 곳도 직업도 다양했다.
 이름이 같기 때문에 ‘변호사’ ‘미용사’ ‘작은 얼굴’ 등 직업이나 특징과 관련된 별칭으로 서로를 부르기로 했다. 최고령 다나카는 ‘신간센씨’라는 별칭이, 중 2학년생 다나카는 피아노 반주를 즐긴다고 해서 ‘반주의 다나카’로 불렸다. 

 전국의 다나카 히로카즈들이 이날 모인 이유는 기네스 세계 기록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동성동명(同姓同名)인 사람들이 동시에 몇 명 모이는지를 겨루는 분야다.
 기네스 재팬에 따르면 이 분야 세계 기록은 2005년 미국의 ‘마사 스튜어트’들이 달성한 164명이다. 요리연구가 마사 스튜어트가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기획한 것이다.
 87명의 다나카 히로카즈들로는 신기록 달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모임을 주도한 도쿄의 회사원 다나카(48)는 “같은 한자 이름만 모으려고 했는데, 한자가 다른 ‘다나카 히로카즈’들도 모아 3년 뒤에 세계기록을 갱신할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다나카 히로카즈 운동 전국대회 2017’라는 이름이 붙은 이번 모임은 2010년과 2011년에 이어 세 번째다. 회사원 다나카가 지난 1994년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당시 긴테쓰 버팔로 구단이 다나카 히로카즈 선수를 1순위로 지명하는 것을 보고 놀란 게 계기였다. 이후 서적이나 지인의 정보, 인터넷을 할용해 자신과 이름이 똑같은 다나카 히로카즈를 찾았다. 지금까지 137명의 다나카가 모임에 참여했다.


 2014년엔 사단법인 ‘다나카 히로카즈회’도 설립됐다. 정관에는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을 소중히 여기면서 사는 마음 함양, 우연한 인연의 소중함 개발 등을 도모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다나카 히로카즈의 노래’를 만들거나, <다나카 히로카즈씨>라는 책도 출판했다.

 미국에는 1969년 ‘짐 스미스 협회’가 설립돼 현재 1800명 이상의 짐 스미스가 참가하고 있다. 몇 년 전 기네스 세계 기록에 도전했지만 전국에서 모인 사람은 6명이었다고 한다.

 비록 기네스 기록은 깨지 못했지만, 다나카 히로카즈들은 모두 즐거운 표정이다. 이날 모임에선 반 년 전 야마구치현에서 아기 ‘다나카 히로카즈’가 태어났다는 사실도 보고됐다. 이들은 서로에 대해 “남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먼 친척 같다”라고 입을 모았다.
 다나카 히로카즈들은 “자신이 고른 게 아니다~”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불려지고 있었다~” 등 ‘다나카 히로카즈의 노래’를 부르면서 기네스 기록 재도전을 맹세했다. 회사원 다나카는 “시시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시시한 것을 열심히 할 수 있는 게 건전한 사회의 표시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성씨연구가 모리오카 히로시(森岡浩)가 1990년대 후반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에서 가장 많은 이름은 다나카 미노루(田中實)로 3000명 이상이라고 한다. 1986년 메이지생명의 조사에선 사토 가즈코(佐藤和子)였다고 아사히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