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가 스모(相撲·일본 씨름)계의 ‘맥주병 폭행’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일본의 국기(國技)인 스모가 선수 폭행을 근절하지 못한 게 드러난 데다, 가해자가 스모 선수들의 정점에 있는 ‘요코즈나’(橫網·가장 높은 등급 장사)라는 점에서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 17년만의 ‘요코즈나 4인 시대’에, 연일 만원사례가 이어지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스모계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에 일본 언론들의 비판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선배가 말하는데”…맥주병으로 머리 가격
15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몽골 출신 ‘요코즈나’ 하루마후지(日馬富士·33)가 지난달 25일 저녁 돗토리(鳥取)현에서 동료·후배 선수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맥주병으로 몽골 출신 후배 다카노이와(貴ノ岩·27)의 머리를 때리는 등 폭행를 가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당시 술자리에는 하루마후지, 하쿠호(白鵬), 가쿠류(鶴龍) 등 몽골 출신 요코즈나를 비롯해 10명 안팎이 참석했다. 1차 술자리에서부터 술을 꽤 마시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2차 술자리로 옮기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술에 취한 하루마후지가 다카노이와에게 “선배들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지 않는다” 등 평소 태도에 주의를 주는 사이 다카노이와의 휴대폰이 울렸다. 다카노이와가 휴대폰을 꺼내는 순간 하루마후지가 탁자 위에 있던 맥주병을 집어들어 머리를 가격했다. 하루마후지는 “선배가 말하는데”라면서 다카노이와에게 20~30차례 주먹다짐까지 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다카노이와가 지난 12일부터 시작된 규슈대회를 결장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5~9일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던 다카노이와는 13일 뇌진탕, 두개골 골절 등으로 인한 전치 2주 진단서를 일본스모협회에 냈다.
이에 앞서 다카노이와의 스승인 다카노하나(貴乃花)가 지난달말 돗토리현 경찰에 하루마후지를 폭행 혐의로 신고, 경찰이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마후지는 14일 사죄의 뜻을 전한 뒤 규슈 대회 출전을 포기했다.
■제2전성기 맞은 스모계에 날벼락
일본 스모계는 요코즈나의 폭행 사건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지난 2007년 동료들의 집단 폭행으로 인한 선수 사망과 2011년 승부조작 사건 이후 스모계가 외부인사를 포함한 재발방지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기강 확립에 노력해온 가운데 터졌기 때문이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스모는 1990년대 유명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공전의 인기를 얻다가 2000년 들면서 인기가 시들해졌다. 2005년에는 연간 흥행일수가 전성기의 6분의 1인 15일까지 떨어졌고, 2011년에는 수십명의 선수가 관여한 승부 조작 문제로 순회경기가 취소됐다. 하지만 이후 꾸준한 조직 개혁과 관객 유치 활동 등으로 서서히 인기를 회복했다. 올초에는 기세노사토(稀勢の里)가 요코즈나로 승진, 17년만에 맞은 ‘요코즈나 4인 시대’에 들썩였다. 연간 총 90일의 공식경기
에도 만원사례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이 같은 흥행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특히 이번 사건이 품격과 역량 양면에서 뛰어난 선수를 자격조건으로 하는 요코즈나가 가해자라는 점에서 충격이 더 큰 모습이다.
일본스모협회는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강한 수위의 징계를 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 같은 스모협회의 뒤늦은 대응을 두고도 위기감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스모협회가 이번 사건을 이미 간접적으로 알았으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사실상 ‘방치’했다는 것이다. 하루마후지는 이번 규슈대회에 아무 일 없었던 듯 출전했다. 앞선 대회에 이어 2연패를 노리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앞서 그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도 “관객들에게 많은 감동과 기쁨을 선사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일본 주요 언론들은 기사는 물론 사설을 통해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사설에서 “요코즈나의 품격은 어디로 갔느냐”고 비판했고, 마이니치신문도 “요코즈나 자격이 없다”고 했다.
앞서 역대 최단기 요코즈나 승진을 이룬 아사쇼류(朝靑龍)는 2010년 술에 취해 지인을 때린 책임을 지고 은퇴했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하루마후지도 자진 은퇴로 몰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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