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때부터 갈색인 머리카락을 왜 검게 염색해야 하는 거죠?”
일본에서 한 여고생이 제기한 소송의 향방이 주목을 끌고 있다. 선천적으로 갈색인 머리를 검게 염색하라고 강요하는 학교 측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손해배상을 요구한 것이다.
30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오사카(大阪)부 하비키노(羽曳野)시의 부립 가이후칸(懷風館)고교 3학년인 ㄱ양(18)은 약 220만엔(약2180만원)의 손해배상을 오사카부에 요구하는 소송을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제기했다. 지난 27일 열린 제1차 구두변론에서 오사카부 측은 청구기각을 요구했지만, ㄱ양 측은 “학생지도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이지메(괴롭힘)”라고 주장했다.
소장 등에 따르면 ㄱ양은 날 때부터 색소가 옅어 머리카락이 갈색이었다. 중학생일 때에도 머리를 검게 염색하라고 강요당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2015년 고교에 입학할 때 ㄱ양의 어머니는 “고등학교에서도 같은 일이 없도록 배려해주길 바란다”고 학교 측에 전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1~2주에 한 번꼴로 머리를 검게 염색하라고 지속적으로 강요했다. ㄱ양은 거듭된 염색 탓에 두피가 벗겨지고 머리카락이 너덜너덜해졌다고 한다. 교사로부터 “한부모가정이니까 갈색 머리를 하고 있는 거냐”고 비방을 당하거나 지도를 받다가 호흡 곤란으로 구급차에 실려간 적도 있다. 학교 문화제나 수학여행도 갈색 머리라는 이유로 참가하지 못했다.
ㄱ양은 학교 측으로부터 “머리를 검게 물들이지 않으려면 학교에 올 필요가 없다”라는 말을 들었고, 결국 지난해 9월부터 학교에 가지 않고 있다. 학교 측은 지난 4월 ㄱ양의 이름을 학생명부에서 삭제하고 다른 학생이나 학부모에겐 퇴학했다고 둘러댄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 측은 ㄱ양의 변호인에게 “설령 금발의 외국인 유학생이더라도 규칙이므로 검게 물들이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오사카부 교육위원회와 학교 측은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코멘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소식이 알려지면서 인터넷 댓글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는 “원래 갈색인 머리카락을 염색하라는 건 이해불가능” “아이들에게 심한 행동을 하는 것도 정도가 있다” 등 학교 측을 비판하는 글이 잇따랐다.
학생들에게 단정한 몸가짐이나 옷차림을 일률적으로 강요하는 일본 학교의 엄격한 규칙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의 많은 학교에서는 머리카락의 파마나 염색, 화장, 액세서리, 치마 등에 대한 규칙이 세세하게 정해져 있다. 개인에게 집단에 동조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는 일본 특유의 ‘동조압력’을 거론하기도 한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오사카의 일부 학교에서는 ‘자기머리 등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머리카락이 갈색인 학생은 입학할 때 머리카락 색깔을 측정해 이를 수치로 등록한다. 머리카락 수치에 변화가 없으면 지도를 받지 않는다. 학교 측은 학생에게 잘못된 지도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제도 자체의 반인권성을 문제 삼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5월 아사히신문 조사에 따르면 일본 도쿄의 도립고등학교 절반 이상이 학생들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이 염색이나 파마를 한 것이 아니라는 ‘자기 머리 증명서’를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이나 어린 시절 사진을 제출을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 이를 두고 학생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고, 도 교육위원회는 지난 7월 “증명서 제출이 임의라는 것을 학생·학부모에게 명확히 전달해달라”고 도립 191개교에 통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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