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5일 골프 라운딩을 했다. 2박3일간 일정으로 이날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일정이다.
두 정상의 ‘골프 밀월’은 지난 2월 미국 플로리다주 트럼프 대통령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1박2일 간 골프를 즐긴 데 이어 두 번째다. 서로를 ‘신조’ ‘도널드’라고 부르는 관계로까지 발전한 두 정상의 밀월 관계를 과시하고 미일 동맹을 더욱 다지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동맹을 더 위대하게”…골프 외교 통해 밀월 과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이날 오후 사이타마(埼玉) 현 가스미가세키(霞が關) CC에서 골프 라운딩을 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골프 경기장인 가스미가세키CC는 1929년 설립된 일본 유수의 골프장으로 여성을 정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남녀 차별 논란을 일으켰던 곳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는 이번 라운딩을 통해 세계 정상 가운데 유일하게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 외교’가 가능한 총리로, ‘신조-도널드’ 밀월 관계를 세계에 과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서로를 ‘론’ ‘야스’라고 부르면서 전후 가장 긴밀한 동맹을 구축했던 ‘론-야스’ 밀월 관계를 재현하겠다는 것이다.
그간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구축을 위해 그가 좋아하는 골프를 적극 활용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9일 만인 17일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에서 트럼프 당선인과 외국 정상으로선 처음 만났다. 당시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황금색 일본제 ‘혼마’ 골프채를 선물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미가 골프라는 점을 알고 준비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셔츠와 골프용품을 선물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골프를 통해 딜을 성사시켰다”고 말했을 정도로 골프를 취미 뿐 아니라 인간관계 구축과 교섭의 장으로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베 총리의 극진한 ‘오모테나시’
트럼프 대통령의 2박3일간 방일 일정에 골프 일정을 넣은 것도 ‘골프 외교’의 연장선이다. 실제 이번 골프 회동에서도 아베 총리는 일본 특유의 극진한 접대인 ‘오모테나시’를 선보이고 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도착하기 30분전 쯤 골프장에 도착, 대통령 전용헬기 ‘마린 원’으로 골프장에 내린 트럼프 대통령을 맞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 악수하면서 골프장에 대해 “멋지다( wonderful)”라고 말했다.
두 정상은 점심에 앞서 ‘도널드와 신조, 동맹을 더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문구가 자수로 새겨진 모자에 사인한 뒤 기념촬영을 했다. 외무성에 따르면 이 모자는 아베 총리가 ‘깜짝 선물’로 준비한 것으로,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들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을 본떠 미일 동맹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점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햄버거에 사용한 소고기는 미국산이라고 한다. 두 정상은 저녁에는 도쿄의 철판구이 전문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하는 와규(일본산 소고기) 스테이크로 소수만 함께하는 비공식 만찬을 가질 계획이다.
두 정상이 라운드한 곳은 도쿄 올림픽을 위해 개조 한 동(東)코스다. 기복이 심하고 벙커가 130개나 있는 난 코스라고 한다. 주변에선 “두 사람이 기분 좋게 돌 수 있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올림픽 코스를 보여주고 싶다”는 아베 총리의 뜻에 따라 정해졌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2021년 1월까지이고, 아베 총리도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연임에 성공하면 2021년 9월까지의 장기정권의 길을 열 수 있다. 이 때문에 아베 총리가 “미·일 정상이 대통령과 총리의 자격으로 도쿄 올림픽을 함께 맞자”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이날 골프 라운딩에는 일본 골프의 간판이자 세계랭킹 4위인 마쓰야마 히데키(松山英樹)가 동석해 함께 라운딩했다. 지난 2월 양 정상이 라운딩을 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희망해 아베 총리 측에서 부른 것이다. 당시 라운딩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프로골퍼 어니 엘스가 동반했다. 두 정상과 마쓰야마 선수의 골프 라운딩에 대해서는 “톱클래스 프로 선수의 정치이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날 세 사람은 9홀을 함께 돌았다. NHK는 “관계자에 따르면 세 사람이 함께 파를 기록한 홀도 있어, 두 정상이 주먹을 마주치거나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하면서 친목을 돈독히 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골프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골프장에서는 플레이 중 대화도 활기를 띈다”며 “서로 편안하게 속내 이야기가 가능하므로 여러 어려운 화제도 가끔 섞으면서 느긋하게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에 “아베 총리와 마쓰야마 히데키라는 두 사람의 멋진 사람들과 골프를 하고 있다”는 글과 함께 자신의 샷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올렸다.
■외조부 기시 전 총리 따라 …골프외교로 ‘강한 일본’으로
‘골프 외교’를 적극 활용하는 아베 총리의 머릿 속에는 외할아버지이자 자신의 사상적 근원인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과의 골프 회동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A급 전범 용의자이자 ‘쇼와의 요괴’로 불렸던 기시 전 총리는 1957년 6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골프를 함께 쳤다. 이후 두 사람은 미일 안보조약 개정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기시 전 총리가 골프로 구축한 신뢰관계를 기반으로 미일안보조약 개정을 이뤄내, 동맹관계의 초석을 다졌다고 본다. 아베 총리는 2월 방미 전에도 “(플레이 때문에) 분해하는 아이젠하워의 모습을 보면서 두 사람의 거리가 급속히 가까워졌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후 국회 답변에서도 “안전보장 등 내 생각에 대해 상당한 이야기를 했다”고 골프외교의 효용을 강조한 바 있다.
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중국의 군사력 확장 등을 이유로 ‘전쟁가능한 보통국가’로 가려는 아베 총리가 ‘골프 외교’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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