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제/김진우의 도쿄 리포트

"닌자 구합니다"...현대 일본 닌자의 세계

 ‘닌자 구합니다.’
 일본 각지가 ‘닌자(忍者·일본 전국시대의 첩보·암살 집단) 인력난’ 에 고심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인 닌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진짜’ 닌자를 보고 싶다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만족시키는 ‘인술(忍術·닌자가 사용하는 무술)’을 갖춘 닌자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닌자 모집’을 홍보하는 관광시설이나 닌자 훈련 코스를 신설하는 배우 양성소까지 생기고 있다.

 ■“닌자가 부족해”
 7일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증가함에 따라 인터넷이나 영화 등을 통해 닌자를 알고 ‘실물을 보고 싶다’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일본 각지의 테마파크나 관광시설에 몰려들고 있다.
 도쿄 번화가인 신주쿠(新宿) 가부키초(歌舞伎町)에는 수리검(手裏劍)이나 칼 등을 들고 닌자의 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하루에 100명 정도가 체험을 할 수 있는데 1개월 전에 예약이 거의 다 찰 정도로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 한 필리핀 관광객은 “이번 여행에서 닌자를 만나는 것을 가장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설립된 일본닌자협의회가 해외 1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닌자를 안다’라고 응답한 외국인은 98.7%였다. ‘닌자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고 답한 외국인은 60%였다. 현대 일본에 진짜 닌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외국인이 적지 않은 셈이다.
 원래 닌자는 적진에 잠입해 정보를 수집하거나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리는 ‘그림자 같은 존재’다. 관련 문헌이 거의 없는 탓에 구체적인 실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영화 등의 영향 때문인지 첩보술보다도 무술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닌자 특유의 ‘액션’에 대한 외국인 관광객의 ‘눈’이 높아졌기 때문에 관광시설 측에선 이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만큼의 닌자를 구하기 힘든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닌자 모집’ 동영상에 닌자 배우 양성소까지
 홋카이도(北海道) 노보리베쓰(登別)시의 ‘노보리베쓰다테(登別伊達) 시대촌’. 에도(江戶) 시대(1603~1867년)의 마을을 재현한 테마파크로, 도가쿠시(戶隱)류 인술 강사가 지도하는 수준 높은 닌자 쇼가 인기다.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입장객수가 10년 전보다 4배가 늘어난 연간 30만명에 달한다. 
 닌자 역을 맡고 있는 8명의 연기자가 하루 6차례 공연하지만 기술을 습득한 ‘닌자’가 부족한 실정이다. 게다가 음향이나 조명 등 무대 뒤의 일까지 ‘1인2역’을 소화해야 한다.  공연 회수를 늘리고 싶어도 현재 인원으로는 할 수가 없어 ‘닌자 모집중’이라는 제목을 단 홍보 비디오를 제작했다. 이달 안에 무료 설명회를 처음 개최할 예정이다. 야마다 게이지(山田桂司) 예능부장은 “어떻게 해서든 닌자를 늘리지 않으면 늘어나는 외국인에 대응할 수 없다. 하지만 닌자를 간단히 늘릴 수가 없으니까 그게 괴로운 부분”이라고 밝혔다.
 닌자 수요가 증가하면서 새로운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인술을 하루 아침에 몸에 익히는 것은 무리다. 도쿄 세타가야(世田谷)구에 있는 배우 양성소는 닌자 훈련 코스를 신설했다. 낫이나 밧줄 등 10종류 이상 되는 무기의 사용법이나 닌자 특유의 보법(步法),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방법 등 몇 가지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무술에 정통한 연기자라도 무대에 서는 데 반년은 걸릴 정도로 힘든 코스다.
 닌자의 세계에 뛰어드는 젊은이들도 있다. 모모(百百·25)는 도쿄의 IT 회사에서 일하다가 자신이 ‘톱니바퀴’가 되고 있다고 느끼던 차에 우연히 ‘닌자 모집’ 동영상을 봤다. 지난 봄 홋카이도로 이주해 노보리베츠다테 시대촌에 일하면서 밤에는 닌자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이 도장에서 한사람 몫의 닌자가 된 것은 지난 5년 간 겨우 5명. 모모는 “한 번의 인생이니까 세계에서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문화의 ‘아이콘’으로 연구소도
 닌자는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나루토> 같은 닌자 만화가 애니메이션, 게임으로까지 제작되는 등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에선 지난 7월 소설을 원작으로 한 <닌자의 나라>가 상영돼 히트를 치기도 했다.
 닌자를 주제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시설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일본닌자협의회에 따르면 닌자와 관련 있는 단체나 체험시설, 박물관 등이 전국적으로 100곳이 넘는다. 일본닌자협의회는 미에(三重)현 이가(伊賀)시와 사가(滋賀)현 고카(甲賀)시 등 닌자와 연고가 있는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구성돼 있다. 
 닌자·인술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미에대는  2012년 닌자 연구를 시작, 지난 7월에는 이가시에 ‘국제닌자연구센터’를 설립했다. 내년 2월 실시하는 대학원 입학시험의 선택과목으로 ‘닌자·인술학’을 새로 도입하고, 같은달 국제닌자학회도 설립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도 후원하고 있다. 문화청은 올해 이가시와 고카시의 ‘닌자 마을’을 ‘일본유산’으로 인정했다. 
 ‘닌자 인력난’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선 이런 닌자 붐을 일과성으로 끝내지 않는 긴 호흡의 대처가 필요하다고 일본 언론은 지적하고 있다. 닌자협의회 측은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닌자 인프라’를 어떻게 정비해갈 것인가가 과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