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뿐 아니라, 서점 직원들도 베스트셀러를 ‘만들’ 수 있다. 일본에서 서점발(發) 베스트셀러가 속속 탄생하고 있다. 책의 일부를 가리고, 서점 직원의 이름을 딴 상을 만드는 등 자신이 재미있게 읽은 책을 널리 읽히기 위한 서점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효과를 보면서다. ‘독서광’ 서점 직원들의 열의와 자신감이 불황 속 출판시장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도쿄 고토구의 기노쿠니야 서점 라라포트도요스점의 특설 판매대에는 책 말미의 해설을 필름으로 가린 문고본이 늘어서 있다. 하야미 가즈마사의 미스터리 소설 <이노센트 데이즈> 문고본의 가려진 해설 부분에 삽입된 종이에는 “소설을 다 읽고 난 뒤 해설을 읽지 않으면 소설의 충격이 절반 또는 제로가 될 것”이라는 이 서점 문고담당자의 홍보글이 쓰여 있다. 지난 3월 이 실험을 시작한 뒤 이 책은 두 달 동안 1000권 넘게 팔렸고, 서점 매출은 10배로 뛰었다. 아이디어를 낸 직원 히라노 치에코는 3년 전 이 소설의 양장본을 읽으면서 ‘너무 재미있으니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문고판 발매를 계기로 행동에 옮겼다고 아사히신문에 설명했다.
책의 내용물을 숨기는 마케팅은 지난해 7월 이와테현 모리오카의 사와야서점에서 시작됐다. 이 서점 직원이 가장 추천하는 책을 ‘문고X’로 정해 제목과 저자를 알 수 없도록 포장지에 싸서 판매했다. 이벤트는 대성공이었고 지난해 전국 650개 이상의 서점으로 확대됐다. ‘문고X’는 18만부 넘게 팔렸다. 한국의 은행나무·북스피어·마음산책 출판사도 지난 4~5월 ‘개봉열독 X 시리즈’로 이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산세도서점은 도쿄 도내 점포에 권위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나오키상 수상작과 함께 ‘아라이(新井)상’ 수상작도 나란히 배치한다. 아라이는 이 회사 영업본부의 문학담당 직원 아라이 미에카(新井見枝香)다. 선정 기준은 아라이가 반 년간 읽은 책 중 제일 재미있었던 책이다. 이 때문에 매일 퇴근 뒤에도 밤 늦게까지 책을 읽는다는 아라이는 “선정은 완전히 주관적이지만 책임과 열의를 가지고 추천한다는 뜻에서 상에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 없으면 ‘해당작 없음’이라 붙이고 비워둔다. 아라이상 이벤트 기간 중에는 나오키상 수상작보다 더 많이 팔리는 작품도 나온다. 이 서점은 지난 4월 시대소설을 다뤄온 작가 다카다 가오루가 선정하는 ‘다카다 가오루상’도 만들었다.
아라이상 외에도 일본에선 서점 직원들이 선정하는 ‘서점대상’이 있다. 2004년 창설된 이 상은 전국의 서점 직원들의 투표로 선정한다. 각 지역에서 만든 ‘서점대상’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도쿄 옆 지바현에서는 책과 술을 좋아하는 서점 직원과 출판사 영업직원들이 술집에서 의기투합해 2005년 ‘사케노미(술꾼) 서점원 대상’을 만들었다. 출판된 지 1년이 지난 문고본을 발굴한다. 시즈오카 서점대상, 오사카 혼마(진짜) 책 대상, 교토 미나즈키(水無月)대상, 오키나와서점대상 등 서점 직원들이 선정하는 상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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