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웰다잉(Well Dying)’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시신 기증이나 유언장 작성 등 지금까지 걸어왔던 삶을 되짚으면서 ‘잘 죽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웰 다잉’ 바람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일본에서 먼저 불었다. 임종(臨終)을 준비하는 활동인 ‘슈카츠(終活)’는 문화 현상, 나아가 산업으로까지 성장했다. 일본 노인들은 간병, 종말 의료, 장례 준비, 재산 상속 등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 ‘엔딩노트’라는 공책도 팔린다. 자신이 묻힐 납골당이나 묘지를 둘러보는 ‘슈카츠투어’도 성행하고 있다. 무덤 친구인 ‘하카토모(墓友)’라는 말도 생겼다.
‘슈카츠’의 배경으론 일본인 특유의 철저한 준비성이 꼽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초고령 사회를 넘어 ‘독거노인 사회’, ‘고독사 사회’로 가는 현대 일본의 그늘이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슈카츠에선 생전(生前) 정리나 생전 계약이 성행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효고현 니시노미야에 있는 ‘릴리프’라는 회사는 연간 1000건의 생전 정리를 해주고 있다. “물건들을 방치한 채 죽으면 주변에 폐를 끼친다”는 이유로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비용은 35만엔(약 356만원). 신원보증과 간병부터 화장이나 납골까지 대신해 주는 생전 계약도 인기를 끈다.
‘고독사보험’이라는 금융상품도 나왔다. 독거 노인이 임대주택에서 홀로 사망할 경우 다음 세입자를 구하기 어렵고 임대주택 정리에 비용이 많이 들어 이에 대한 집주인의 손실을 보상해주는 보험이다. 일본에선 고독사 우려 때문에 집주인들이 노인들에게 주택 임대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집주인의 65%가 독거노인에게 주택 임대를 꺼린다는 조사도 나왔다. 고독사보험은 이런 집주인을 안심시킬 수 있는 수단인 셈이다.
일본 사회의 문제는 노인 인구가 많다는 것을 넘어선다. 혼자 사는 사람이 증가하고, 가족·친지간의 관계는 옅어지고 있다. 2014년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는 65세 이상 독거 노인이 2035년에는 762만명으로, 2010년 498만명보다 53%나 늘어난다고 예측했다. 노쇠하고 병이 들어도 혼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슈카츠의 최근 동향에는 ‘웰다잉’보다 ‘불안’의 요소가 더 강해 보인다. 죽기 직전까지, 혹은 죽고 나서 험한 꼴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과 걱정이 투영돼 있는 게 아닐까.
문제는 슈카츠에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본종합연구소는 2035년에는 고령자 세대의 27.8%가 수입이나 저축이 부족해 생활보호 수준을 밑돌 것이라는 추계를 최근 내놓았다. 죽음을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간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실버산업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국가가 정책적으로 나서서 품위있는 죽음을 맞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 독거노인 주거 지원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세계에서 장수(長壽)는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해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고령화나 노인 문제를 듣다 보면, 모두들 노인들을 ‘주변에 폐를 끼치는 존재’로 여기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경제발전의 장애물도 고령화고, 국가재정 위기의 이유도 고령화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를 보여줬다. 이를 능가하는 게 한국이다. ‘웰다잉’은 둘째치고, 고독사나 독거노인 문제가 얼마나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노쇠한 부모를 낯선 곳에 유기하는 ‘고려장’은 설화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현대판 고려장이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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