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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트럼프 시대]③‘38년의 금기’ 건드리며 더욱더 일그러질 미·중

ㆍ‘하나의 중국’
ㆍ남중국해·북핵에도 ‘강경’…동북아에 후폭풍 불가피…극단적 대립까진 안 갈 듯

[키워드로 보는 트럼프 시대]③‘38년의 금기’ 건드리며 더욱더 일그러질 미·중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이익과 미국의 국가안보에 초점을 맞춘 외교정책을 추진한다.”

백악관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에 맞춰 6대 국정기조를 공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미·중 관계, 나아가 동북아 정세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들어갔다. 트럼프가 대중 관계에서 무역적자 등 경제 분야를 넘어 남중국해와 북핵 등 안보 문제에 이르기까지 강경기조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가 중국의 ‘핵심 이익’인 ‘하나의 중국’ 정책까지 건드리면서 미·중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미·중 갈등과 마찰이 커져 동북아에 격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그 후폭풍을 헤쳐가야 할 과제를 떠안게 됐다. 

■ ‘레드라인’ 넘은 트럼프 

트럼프는 당선 뒤 1979년 미·중 수교 이래 양국 관계의 원칙이던 ‘하나의 중국’ 정책도 손댈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당선 직후 미국 대통령으로는 37년 만에 처음으로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했고 지난 11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선 “중국은 북한과 관련해 우리를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왜 미국이 하나의 중국에 얽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미국은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 뒤 중국과의 관계를 풀었고 1979년에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인정해 대만과 국교를 끊었다. 

중국은 트럼프의 언동이 ‘레드라인’을 넘어섰다고 본다. 트럼프는 후보 시절부터 미국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적 위협으로 중국을 거론하며 강경 대응을 주장해왔다. 지난해 3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는 “겉으로는 북한을 제재한다더니 옆방에선 북한과 함께 낄낄거리면서 우리를 비웃는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환율조작국’이라 맹비난하면서 중국산 수입품에 45% 관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또 반중 매파인 피터 나바로를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초대위원장으로 지명했다. 

갈등하면서도 충돌은 피해왔던 오바마 행정부 때와 달리 트럼프 정부는 훨씬 거칠어진 대중 정책을 펼 것이 확실하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 등 강경한 무역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 부시 시절 ‘군사적 갈등’ 재연?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공세를 견제하기 위한 강경책을 추진할 것으로도 예측된다. 오바마 행정부가 제어해왔던 ‘항해의 자유 작전’을 더 공격적으로 수행하고, 역내 해군력 강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나눠 갖길 원하는 중국도 트럼프의 압박에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으로선 강력한 외교·군사적 대응을 요구하는 국내의 민족주의적 목소리를 외면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남중국해에서 미·중 갈등이 더욱 커지고, 자칫 군사적 충돌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18일 “미·중 외교·군 인사들이 세력 경쟁을 하고, 서로를 시험하고, 때때로 ‘남성호르몬 대회’를 벌이듯 공해상에서의 상황을 오판할 위험이 상존한다”고 썼다. 무엇보다 트럼프와 시진핑은 서로에게 익숙지 않다. 동시에 각기 자국 내에서 더욱 공격적인 행동을 바라는 매파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 10주 뒤 중국 함정이 미군 함정과 충돌 직전까지 갔고, 일주일 뒤엔 하이난(海南)섬 인근에서 중국 전투기와 미군 정찰기가 충돌해 사상자가 발생한 전례가 있었다.

■ 극단적 대립은 피할 듯 

다만 미·중이 극단적인 상황으로 당장 치달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트럼프가 아시아의 전략적 환경에 적응하면 ‘대중영합식’ 선거공약은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것이나 중국 상품 보복관세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두 나라 경제가 서로 얽혀있고, 중국의 대외무역에서는 미국보다 유럽 비중이 높다는 점 등도 거론된다. 전면적인 무역전쟁은 양측 모두에 득보다 실이 많다. 

미국이 중국 ‘봉쇄’를 추진하면 동북아의 군비 증강과 군사 충돌 위험성이 커진다. 이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미국의 힘의 우위가 여전한 상황에서 중국이 급격히 군비를 증강해 미국에 직접적인 군사 도전을 시도할 가능성은 낮다. 경제 성장이 둔화되는 가운데 올가을 시진핑 2기 체제를 짜야 하는 중국의 상황도 변수다. 지난해 필리핀을 끌어당겼듯, 직접 미국에 도전하지 않는 대신 경제적 원조를 제공하면서 주변국들을 부추기거나 회유하는 전략으로 나올 수 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 견제를 한 단계 높일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 등 동아시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와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와 같은 이슈들이 트럼프 정부의 중국 견제정책의 강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최근의 행보들을 계속해 나간다면 미·중 관계는 훨씬 더 일그러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