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제

일본 ‘탈출극’ 10일만에 나타난 카를로스 곤은 뭘 말했나

 “2시간30분의 1인 독무대”, “새 차를 소개하는 CEO(최고경영자) 모습”.
 8일 오후(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카를로스 곤 전(前) 닛산 회장의 기자회견에 대한 해외 언론들의 평가다.
 9일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은 검은 정장에 분홍 넥타이 차림으로 예정보다 10여분 일찍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그는 100여명의 보도진을 앞에 두고 “(내가 구금된) 이후 400일 넘게 이 날을 기대해왔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나에 대한 혐의는 근거가 없다”면서 결백을 주장했다. 자신의 체포·기소를 “정치적 박해”라고 수 차례 말했다. 곤 전 회장이 지난달 29일 일본 국내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보석 조건을 어기고 레바논으로 도주한 후 공개적으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곤 전 회장은 이날 손짓 몸짓을 섞어가면서 1시간10분 가까이 기자회견 모두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일본에서 탐욕스러운 독재자로 불려왔지만 잘못된 거다. 나는 일본을 사랑한다”면서 발언을 마무리했다. 이후 영어·프랑스어·아랍어 등이 뒤섞인 질의응답이 1시간 넘게 진행됐다.

 ■“도주 이외 선택지 없었다”…방법은 안 밝혀
 곤 전 회장은 보석 중에 일본에서 도주한 이유에 대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희망이 없었다. 사법 정의로부터 도망간 것은 아니라 부정과 정치적 박해로부터 벗어난 것”이라고 했다. 또 “비인도적 취급을 받아 나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도주 이외의) 선택지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생애에서 가장 어려운 결단이었지만, 유죄율이 99,4%나 되는 (일본의) 사법제도 안에 내가 직면하고 있었던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일본에서 죽을까 출국해야 할까 (생각했다)” 등 도주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구체적인 도주 경위에 대해선 “협력해준 사람을 위험에 처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입을 다물었다. “여러분들이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일본에서 어떻게 출국할 수 있었는지 말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니다”고도 했다.
 다만 도주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선 “작년 연말 변호사로부터 재판 개시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들었다. 마음의 버팀목인 아내도 만나지 못해 일본에 머물 필요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도주가 위법이지 않냐는 질문에는 “위법행위로 문제일지 모르지만 일본 검찰도 법을 어기고 있다”고 반박했다.

 ■“음모 뒤에 그들”...일본 정부 관계자 실명은 안 밝혀
 곤 전 회장은 자신의 체포·기소가 르노와의 경영 통합을 우려한 닛산 경영진과 일본 당국의 ‘음모’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자신의 체포를 일본이 1941년 미국 함대를 공격한 ‘진주만 공격’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 친구들 중 일부는 닛산에 대한 르노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나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이카와 히로토(西川廣人) 전 사장, 경제산업성 출신의 도요다 마사카즈(豊田正和) 사외이사 등 등 닛산 경영진 6명의 실명을 거론했다. “음모의 뒤에는 그들이 있다”고 했다.
 다만 일본 정부 관계자에 대해선 “레바논 정부가 (나의) 보호를 어렵게 하는 것은 말하지 않겠다”고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곤 전 회장은 “나는 누구도 못했던 회사의 재건을 이뤄냈다. 나에 관한 책도 20권 이상 집필됐다. 그런데 갑자기 겨우 1분 새 소수의 검찰관과 닛산 간부가 ‘냉혹하고 탐욕스럽고 독재자다’라고 말한 거다”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향후 레바논에서 재판을 받을 것이냐는 질문에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국가에서는 어디서나 재판을 받겠다”고 했다. 향후에 대해선 “지금까지도 ‘미션 임파서블’(불가능한 임무)을 여러 번 실현시켜왔다. 몇 주 이내에 오명을 회복하는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14개월간 영혼 파괴” 일본 검찰 비판…일 언론에도 “객관성 없어”
 곤 전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기본적인 인권의 원칙에 반한다”면서 일본의 형사사법제도를 비판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체포 이후 자유를 빼앗기고 가족과 친구로부터 갈라졌다”면서 “그들은 14개월 동안 내 영혼을 파괴하려고 시도하고 내가 아내와 연락하는 것을 막았다”고 했다. 또 “검찰로부터 ‘자백하지 않으면 더 나쁘게 된다. 가족도 추궁당할 것’이라고 들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변호사 없이) 하루 8시간이나 심문을 받았다. 유엔의 기준에도 어긋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검찰이 잘못된 정보를 언론에 흘렸다”고도 했다.
 일본 언론에 대한 불신감도 드러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가한 언론사는 12개국 약 60개사였다. 하지만 일본 언론은 아사히신문, TV도쿄. 쇼가쿠칸(小學館) 등 3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일본 언론들은 비가 내리는 기자회견장 밖에서 스마트폰 등으로 생중계를 시청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곤 전 회장은 “회견에 출석할 수 있는 것은 사실에 기반해 보도하고 있는 매체다. 다른 매체는 닛산과 검찰 당국의 말을 분석이나 비판 없이 그대로 내보내고 있어 객관성이 없다”고 했다.
 그는 세계 최대의 유료 동영상 서비스인 넷플릭스와 독점계약을 체결했다는 한 언론 보도에 대해 “넷플릭스와의 계약은 없다”고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