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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김진우의 도쿄 리포트

아베 총리와 '야유 장군'

 ‘공산당은 나다’, ‘공산당은 동료다’.
 지난 주 일본 트위터에서 이런 해시태그(#)를 단 글들이 확산됐다.
 일본공산당 지지자들이 올린 글들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은 공산당 지지자가 아니지만 “공산당과 주권자를 우롱하는 움직임에 반대한다”, “이론(異論)을 말했다고 딱지를 붙이는 데 반발한다” 등의 글들이 잇따랐다.
 계기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야유’ 때문이다.
 지난 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 입헌민주당 스기오 히데야(杉尾秀哉) 의원이 2016년 방송국에 전파 정지를 명령할 수 있다고 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무상의 발언에 대해 질문할 때였다. 각료 좌석에 앉아 있던 아베 총리가 실실 웃는 얼굴로 스기오 의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공산당”이라고 한 것이다.
 이를 두고 두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에게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행위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저널리스트 아오키 오사무(靑木理)는 “총리가 ‘공산당’을 비판의 단어로 삼는 것은 넷우익같이 저열하다. 삼권분립의 근저가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아베 총리가 야유로 주의받은 지 이틀 만에 비슷한 식의 야유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6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자신이 연루된 의혹을 받는 가케학원 스캔들과 관련한 문서 작성의 경위를 따지는 무소속 이마이 마사토(今井雅人) 의원을 향해 각료석에서 “네가 만든 것 아니냐”고 야유했다. 아베 총리는 “좌석에서 발언을 한 것은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발언 내용은 철회하지 않았다.
 사실 아베 총리는 초·재선 의원 시절 국회 상임위원회 등에서 질문 중인 야당 의원에게 자주 야유를 하는 걸로 유명했다고 한다. 오죽 했으면 ‘야유 쇼군(將軍·장군)’이라고 불렸을까.
 이런 태도는 한 나라의 지도자인 총리가 돼서도 변하지 않은 모양이다. 2012년 12월 2차 집권 이후 “빨리 질문해”, “당신에게 주의하고 싶다”, “없어, 그런 건” 등 문제가 된 야유가 한둘이 아니다. 마이니치신문이 국회의사록을 조사한 결과 올해에만 26차례의 야유 등 불규칙적인 발언이 있었다.
 50년 가까이 일본 정계를 지켜봐온 정치평론가 모리타 미노루(森田實)는 마이니치에 “전후 많은 총리를 봐왔지만 이처럼 품격을 결여하고, 민주주의를 흔드는 듯한 발언이 잇따른 적은 없었다”고 했다. 정부의 대표인 총리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에게 야유를 하는 것은 삼권 분립과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아베 총리는 20일 가쓰라 다로(桂太郞)전 총리(2886일)를 제치고 역대 최장 재임 총리에 등극한다. 하지만 아베 정권은 최근 잇따른 스캔들에 휘말리고 있다. 스가와라 잇슈(菅原一秀)경제산업상과 가와이 가쓰유키(河井克行) 법무상이 선거법 위반 의혹 등으로 잇따라 낙마했고,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문부과학상은 “(수험생들은) 자기 분수에 맞춰서 하면 된다”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아베 총리 자신도 정부 주최의 ‘벚꽃을 보는 모임’에 지역구 지지자를 대거 초대해 ‘국고의 사유화’ 비판을 받고 있다. 장기 집권에 따른 해이가 역력하다.
 일련의 스캔들이 아베 정권에 결정타가 될 지는 미지수다. 아베 총리를 대신할 당내 차기 후보나 대안 야당이 없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선 아베 내각을 지지하는 이유로 ‘다른 내각보다 낫다’가 많다. 반면 지지하지 않는 이유로 ‘신뢰할 수 없다’가 가장 높다. 아베 총리는 잇따른 스캔들에 문제가 된 인물을 경질하거나 제도를 중지시키는 등 ‘꼬리자르기식’ 대응을 하고 있다. 대안 부재와 국민의 무딘 반응은 이런 대응을 반복하는 이유다. ‘달리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신뢰할 수 없는’ 정권이 줄곧 이어지고 있는 셈인데, 이걸로 일본의 무엇이 바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