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소녀상’이 일본 최대규모의 국제예술제에 선보인 지 사흘 만에 전시가 중단됐다. 항의와 협박이 쇄도한다는 이유로 주최 측이 일방적으로 중지를 결정했다. ‘표현의 자유’를 생각하기 위한 전시가 정부와 우익들의 압박으로 좌절되면서 되레 일본의 현재 상황을 드러낸 꼴이 됐다.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 실행위원회는 3일 소녀상이 포함된 ‘표현의 부자유·그후’ 전시를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실행위원장인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는 “‘철거하지 않으면 가솔린통을 들고 방해하겠다’는 팩스도 들어왔다”고 했다. 지난달 19일 한 40대 남성의 방화로 35명이 숨진 교토 애니메이션 사건을 연상시킨 것이다.
‘표현의 부자유·그후’는 그간 미술관에서 전시를 거부당한 작품들을 모아 ‘표현의 자유’를 논의해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소녀상은 2012년 도쿄도미술관에서 축소 모형으로 전시됐지만, 나흘 만에 철거된 바 있다.
하지만 전시 소식이 알려진 뒤 실행위 측에 항의 의견이 쇄도했다. 오무라 지사는 지난 1일 개막 후 항의 전화와 e메일이 이틀 간 1000건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3일에는 우익으로 보이는 이가 소녀상에 종이봉지를 씌우려 했다.
일본 정부의 압박도 진행됐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지난 2일 보조금 교부 결정을 검토하겠다고 했고, 가와무라 다카시 다카시 나고야시장은 전시 중지를 오무라 지사에게 요구했다. 그는 “강제연행 증거는 없다”는 망언도 했다. “전시를 공격해도 좋다고 보증한 셈”이라고 오카노 야요 도시샤대 교수는 도쿄신문에 말했다.
전시 기획자와 참여 작가들은 강력 반발했다. 전시 실행위원들은 3일 이번 전시 중지를 “역사적 폭거”로 규정하면서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 작가는 4일 통화에서 “일본에 불편한 것은 듣고 싶지 않고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일본 사회가 파시즘으로 가는 것 같다”라고 했다. 이번 트리엔날레에 참여한 박찬경, 임민욱 작가는 트리엔날레 측에 자신들의 작품 철거 및 전시 중단을 요구했다. 임민욱 작가는 “한 예술가의 작품이 검열을 통해 전시 중단되는 것은 간과할 수 없음을 트리엔날레 측에 전했다”며 “일본 작가들을 중심으로 검열에 의한 전시 중단에 항의하는 연대 성명서도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는 “범죄 가해자가 피해자들에게 공권력, 정치력, 경제력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말라고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시설 ‘나눔의집’ 안신권 소장은 “할머니들도 ‘진실을 알리는 소녀상 전시를 못하게 하는 건 자기들이 잘못이 있으니 그런 거’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일본 예술·언론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일본펜클럽은 성명에서 “전시가 계속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스가 관방장관 등의 발언에 대해선 “정치적 압력 그 자체이며 헌법 21조 2항이 금지하는 ‘검열’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도나미 고지 와세다대 명예교수는 아사히신문에 “소녀상 등의 설치가 불쾌하다는 이유로 전시를 그만두게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반한다”며 “혼란을 이유로 중단하는 것은 반대파의 의도대로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작가 기타하라 미노리는 도쿄신문에 “위안부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 삼고 배우려고 하지 않는 일본 사회의 바닥이 알려졌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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