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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한일 관계

한국대사 불러놓고 말끊고 "무례하다" 역정만 낸 일 외무상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19일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렀다.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일본 측이 요청한 제3국 중재위 구성 시한인 전날까지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은 데 항의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선 “국제법 위반 상태 시정”을 촉구하는 고노 외상과 “소송 당사자 간 해결”을 강조한 남 대사 간 입장이 맞서면서 설전이 벌어졌다. 고노 외상은 특히 남 대사의 말을 중간에 끊고 “무례하다”고 면박을 하는 등 ‘외교 결례’를 보였다.
 이날 오전 10시10분쯤 외무성 4층 회의실. 고노 외상이 먼저 와서 기다리던 남 대사를 향해 “이른 아침에 와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말을 했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눴다. 분위기는 양측이 의자에 앉자마자 싸늘해졌다. 고노는 한국을 강하게 비판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한국이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양자 협의 요구에 이어 중재위 설치 제안도 수용하지 않을 점을 “매우 안타깝다”고 하면서 “국제법 위반 상태를 이 이상 방치하지 않도록 시정 조치를 즉시 하기를 강력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양국 국민이 연간 1000만명이 교류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그 기반인 국제법의 위반 상태를 방치하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도 했다. 그는 특히 “국내 재판 판결을 이유로 국제법 위반 상태를 방치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금 한국이 하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뒤엎는 일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남 대사는 “양국 사이에 지금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일본 측의 일방적인 조치로 양국 국민과 기업들이 많은 어려움에 처하고 피해를 입고 있다”고 응수했다. 또 “한·일 관계 근간을 해치는 상태를 조속히 해소하기 위해 양국 정부가 가능한 모든 차원에서 대화를 통한 노력을 함께 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일본 측의 중재위 요구에 대해선 “(징용판결은) 민사 사안으로 개인 간 의지에 의해 어떻게 타결될 지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 정부는 양 당사자 간 납득이 되고 양국 관계를 해치지 않고 소송이 종결될 수 있도록 환경 조성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일환으로 우리 구상을 제시한 바 있다. 이를 토대로 더 나은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함께 지혜를 모아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해법으로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이 1대1로 기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제안했던 것을 언급한 것이다.
 이런 남 대사의 발언을 한국 측 통역자가 전하는 중 고노 외상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잠깐만요”라며 말을 끊었다. 그는 “한국 제안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 한국 측 제안이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는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전에 전달했다”며 “그걸 모르는 척하면서 제안을 하는 것은 극히 무례하다”고 말했다. 남 대사가 ‘더 나은 해결책을 위해 지혜를 모아가자’고 한 점은 외면하고 공개석상에서 “무례하다”고까지 한 것이다. 고노는 또 “징용공 문제가 수출 규제와 관련 있는 것처럼 규정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지난 1일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할 때 “한국이 징용 문제에 대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사실상 두 문제를 연계시켜 놓고 되레 공박한 것이다.
 고노 외상이 이런 반박을 하는 사이 외무성 관계자들이 취재진에게 회의실에서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남 대사는 발언을 마치지 못했다. 취재진 앞에서 고노 외무상의 역정만 들은 것이다. 당초 양측은 이날 공개된 모두 발언에서 한 차례씩 발언을 하기로 했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이후 보도자료를 통해 남 대사가 “언론에 한국이 징용공 문제와 경제 조치를 연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일방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고 유감스럽다”고 항의했다고 전했다.
 고노 외상은 남 대사와 만난 직후 담화를 발표하고 “한국 측에 의해 야기된 엄중한 한·일관계 현황을 감안해 한국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고노 외상이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 ‘필요한 조치’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와 수출 규제 강화 등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 정부는 이르면 내달 중순쯤 ‘화이트(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해 수출 규제를 더욱 강화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 법원에 압류된 자국 기업 자산이 현금화 될 경우 손해배상청구도 검토하고 있다. 자민당 내에선 비자 발급 절차 강화나 한국산 물품에 대한 관세 인상 등 강경론도 나오고 있다. 다만 일본 정부는 당분간 이런 추가 보복조치를 내비치면서 한국 측을 압박하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