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지난 13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발생한 유조선 피격 사건을 두고 딜레마에 빠져 있다. 미국·이란 간 중개역을 자처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이란 방문 중 일본 관련 유조선이 공격받은 데다 미국 측이 이란을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긴장이 더욱 높아지면서다. 일본 정부가 최대 동맹국인 미국 측 주장과 선을 긋고 있는 것도 이런 딜레마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교도통신은 16일 복수의 일본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일본 정부가 이란이 관여했다는 미국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증거를 제시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측이 유조선 공격 주체를 일찌감치 이란으로 지목한 것과 대비된다.
일본 정부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유조선 공격에 대해 “이란 책임”이라고 단언한 13일(현지시간) 이후 복수의 외교 경로를 통해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해주지 않으면 일본으로선 (이란 소행으로) 단정할 수 없다”면서 일본이나 국제 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할 것을 미국 측에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피격당한 유조선의 운영회사인 고쿠카산교(國華産業) 측은 14일 “2번의 공격 중 2번째 공격에서 복수의 승무원들이 유조선을 향해 날아오는 물체를 목격했다. 피격이 기뢰에 의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미군이 이란 경비선이 유조선에 접근해 불발탄을 제거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이란의 기뢰 공격이라고 주장한 것과 상반되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이란이 유조선 공격 주체’라는 미국 측 주장에 선뜻 손을 들어주지 못하는 것은 일본이 직면한 딜레마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유조선 피격은 아베 총리가 미국·이란 갈등 중재를 위해 이란을 방문한 기간, 그것도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와 면담한 때와 거의 같은 시간대에 일어났다. 당시 아베 총리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로부터 “이란은 미국을 믿지 않는다”는 말까지 들었다.
아베 총리의 중재 노력이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미국 주장대로 이란이 유조선을 공격한 게 사실로 밝혀지면 아베 총리의 외교적 위상 추락은 물론 국내에선 ‘외교 실패’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총리 관저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 측은 미국 측에 “미국과 이란 중재에 나선 아베 총리의 체면이 현저하게 손상됐다. (유조선 공격은)중대 사안이라서 사실 확인에 오류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미국 주장에 동조하면 중동 긴장완화를 목표로 한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 의의가 흔들리는 데다 일본과 이란 관계도 손상된다”고 전했다. 외신도 “중동 평화와 관련해 초보자인 아베 총리가 상처를 동반한 교훈을 얻었다”(월스트리트저널)고 냉소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공격 주체에 대한 국제사회의 입장도 엇갈린다.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 측 주장에 동조하지만 독일, 프랑스 등은 미국과 이란 양측의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진실을 확인하고 책임 소재를 규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독립적인 기관의 진상조사를 요구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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