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도쿄 지요다구에서 열린 ‘어린이 마당 그림전’을 찾은 한 일본 초등학생이 남북한과 일본 아이들의 그림들을 살펴보고 있다.
“우리 집 가는 길에 항공구락부가 있어요. 함께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보자요.”(2학년 김영재)
“우리 만나는 날에 중앙동물원이랑 능라곱등어(고래)랑 놀러가자요.”(4학년 차진권)
남과 북, 일본의 어린이들이 그림을 통해 교류하는 전시회가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열렸다. 8~10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아츠(Arts) 지요다 3331’에서 열린 ‘어린이 마당 그림전’에는 한국과 북한, 일본, 중국에 사는 아이들의 그림 153점이 전시돼 관람객들의 발길을 끌었다.
‘어린이 마당 그림전’은 일본국제볼런티어센터(JVC) 등 일본 시민단체로 구성된 실행위원회가 2001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다. 직접 만나기 어려운 남북, 일본의 아이들이 그림을 통해 서로를 알고,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야니시 아키(宮西有紀) JVC 코리아담당은 “모르니까 무섭고, 무서우니까 알려고 하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면서 “비록 만나지 못해도 그림을 통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행위원회에는 1995년 홍수 피해를 입은 북한에 인도적 식량지원을 했던 시민단체들이 참여했다. 북한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림전을 기획했다. 남·북한과 일본 초등학생에게 매년 ‘다른 나라 아이들에게 자기 소개’를 주제로 하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고, 순회 전시회를 개최해왔다. 2011년부터 중국 옌벤 아이들도 참가했다.
북한은 평양의 릉라, 장경초등학교 아이들이 참여했다. 실행위원회 스탭들이 매년 여름 도쿄 조선학교 아이들과 함께 평양을 방문, 일본에 사는 아이들의 그림을 보여주고 북한 아이들의 그림을 받아왔다. 처음엔 긴장하던 북한 아이들도 “같이 줄넘기 하자” 등 일본 아이들이 보내온 메시지를 보고 ‘언젠가 만날 친구들’ 앞으로 자기소개글을 쓰거나 그림에 대한 메시지를 썼다.
지난해 8월 ‘어린이 마당 그림전’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릉라초등학교 아이들이 일본 아이들의 그림에 메시지를 적고 있다. ‘어린이 마당 그림전’ 실행위원회 제공
올해 주제는 ‘우리 동네, 너희 동네’. 북한 아이들은 평양 시내 동물원, 수영장에서 노는 모습이나 고층빌딩, 바닷가 마을 등 자신이 사는 곳의 모습을 그렸다. “함께 놀면 좋을 텐데”, “우리 함께 가보자” 등의 메시지도 첨부했다. 전시회를 찾은 나고 소마(名古颯馬·17)는 “아이들은 고정관념이 없어서 그런지 뉴스에서 나오는 것과 달리 부드러운 이미지들”이라면서 “국가를 넘어 아이들의 눈으로 보면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19년째 그림전을 이어오는 데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다. 북·일 관계가 악화됐을 때는 북한 측에서 그림을 전달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힌 적도 있다. 2012년부터 진행된 북·일 대학생 교류도 북한 핵·미사일 위기가 고조된 2017년엔 미뤄졌다. 실행위원회의 데라니시 스미코(寺西澄子)는 “위기가 아닌 해가 없었지만, 정부 간 관계가 안 좋아도 시민교류는 이어져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림전은 시민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도쿄 외에도 후쿠오카, 구마모토, 사이타마 등에서도 개최돼왔다. 다음달 8~10일 오사카 국제교류센터에서 개최된다. 언젠가는 그림만이 아니라 아이들도 직접 왕래할 수 있게 돼 평양 아이들이 도쿄에 올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쓰쓰이 유키코(筒井由紀子) 실행위원회 사무국장은 “지금 일본 상황을 보면 북한에도 보통 아이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잊은 것 같다”면서 “그곳에도 매일 웃고 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8~10일 도쿄 지요다구에서 열린 ‘어린이 마당 그림전’에 전시된 작품. 남북한과 일본 아이들이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그린 그림들을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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