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번역돼 있으려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공동 합의문에 서명할 때 합의문 영어판을 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사히신문이 4일 서울의 외교관계자를 인용해 전한 내용이다.
이 관계자는 “비핵화를 먼저 해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하면 체제가 버티지 못한다. 김 위원장은 그런 위기감으로 가득했던 것”이라고 풀이했다.
아사히에 따르면 당시 38분 간 이뤄진 단독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를 되풀이해 압박했다. 다만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아사히는 “북한이 사전협상에서 CVID라는 단어를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에 이를 배려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김 위원장은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쌍방이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법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체제 보증을 계속 요구했다고 한다. 이후 공동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안전 보장 제공을 약속하고, 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확고하고 흔들림없는 책무를 재확인했다. 양측의 주장을 각각 반영한 것이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의욕을 보였던 종전선언에도 강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외교 관계자는 “정치선언만으로는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 북한은 실리를 얻을 수 있나 없나로 판단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아사히는 북·미 정상회담 이후 조만간 열릴 것처럼 보였던 고위급협의가 늦어진 데에는 이처럼 비핵화보다 체제 보장에 집착하는 북한의 태도가 배경에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미국에 대한 의심을 풀지 못해 중국의 지원을 확실히 다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 직후 미국 측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북한 고위급과의 회담을 곧바로 열자고 북한 측에 제안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침묵한 채 지난 19일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향했다. 북·중 관계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시진핑((習近平)국가주석에게 북·미 공동성명의 안전 보장 약속이 실행될 수 있을지 우려를 표시했다. 외교 관계자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미국에 보이지 않고 3주간에 걸쳐 협의에 응하지 않았던 데 대해 “중국으로부터 지원에 대한 확약을 얻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면서 “지금은 그 확답을 얻어서 움직임이 둔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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