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도쿄 등 7개 지역에 ‘긴급사태’가 선언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새 일본 사회는 자숙(自肅)의 ‘공기’(분위기)가 자리잡은 모습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 7일 긴급사태를 선언하면서 “사람 간 접촉을 70~80% 줄이면 2주 후 감염자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서구 언론들은 달성 불가능한 목표라고 했다. 외출 자제나 휴업 요청이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이유다. 한 전문가는 ‘80% 접촉 감소’는 도시 봉쇄를 하지 않는 한 어렵다고도 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선 그런 비관론을 대놓고 얘기하는 이들은 소수다. 오히려 “일본인은 ‘우에사마(上樣·높은 분)’의 말을 잘 따르니까”라면서 달성 가능성을 내다보는 이들도 있다.
결국 ‘1억 총 자숙’으로 극복하자는 건데, 위화감을 지울 수 없다.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맞이한 긴급사태에 대한 책임과 반성은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그간 일본 정부는 소극적인 검사와 격리 정책을 취해 왔다. 검사 수가 적기 때문에 감염 실태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지적에는 귀를 막았다. 감염자가 급증한 도쿄에선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사례가 80% 가까이 된다. 감염 집단을 찾아 박멸하는 방식은 한계에 달했다.
위기감도 부족했다. 전문가 회의가 “1~2주가 확대냐 종식이냐의 갈림길”이라는 견해를 발표한 게 2월 하순이었지만, 감염자 수는 계속 늘었다. 3월20~22일 연휴엔 시민들이 대거 벚꽃놀이에 나왔다. 아베 총리가 도쿄올림픽을 의식해 ‘일본은 괜찮다’는 점을 보이느라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 게 느슨한 대응으로 이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긴급사태 선언에 대해서도 “너무 늦었다”는 여론이 80%대다. 일본 정부가 경제 타격 등을 우려해 주저하는 사이 감염자가 폭증했다. 그 와중에 정부와 도쿄도는 휴업 요청 대상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느라 사흘을 허비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일본 국민들이 떠안았다. 37.5도 이상의 발열이 나흘간 지속될 것 등 지나치게 엄격한 규정 때문에 검사를 받고 싶어도 검사를 받을 수 없는 사례가 속출했다. 정확한 감염 정보가 없다보니 불안감이 사회를 좀먹었다. 마스크와 휴지가 매대에서 사라졌다. 아베 총리가 가구당 천 마스크 2장씩을 배포하겠다고 밝히자 인터넷상에 “농담하냐”, “아베마스크냐” 등 비난이 쇄도한 것은 불안한 민심의 임계점을 보여줬다.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히브리대 교수는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정부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믿을 때 시민들은 ‘빅브라더’의 감시 없이도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무능과 혼란과 책임 회피로 얼룩졌던 코로나19 대응을 일본 국민들에게 ‘마루나게’(통째로 던짐)한 것처럼 보인다. 국민들은 불안감 속에 ‘각자도생’의 길을 강요받고 있다.
한 평론가는 “아베 정권이 긴급사태”라고 했다. 아베 정권은 온갖 스캔들에도 생명을 연장해왔다. 일본 지도층은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1억 총 참회론’으로 책임을 피했다. ‘1억 총 자숙’의 공기 속에 비판마저 ‘자숙’할 것인가. 코로나19 사태 속에 일본은 또다른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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