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기본적 가치 공유” 6년만에 재등장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0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한국에 대해 “국가와 국가의 약속을 지키라”고 했다. 강제징용 문제 등 한·일 관계 현안을 둘러싸고 한국 측에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정기국회 개원에 맞춰 중의원에서 한 시정연설에서 “한국은 원래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면서 “그렇기에 국가와 국가의 약속을 지키고,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를 구축하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제징용 문제는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됐으며, 한·일 관계 악화의 계기는 국제법을 위반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있으므로 한국 측에서 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앞서 아베 총리는 지난달 24일 중국 청두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강제징용 문제는 “한국 측 책임으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한국 정부가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면서 양국이 소송 당사자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가자는 입장인 가운데 아베 총리가 새해 시정연설에서 기존 입장을 거듭 강조함에 따라 올해에도 한·일 관계 개선이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아베 총리가 이번 시정연설에서 지난해와 달리 한국과의 관계를 주변국 외교 항목의 첫 머리에 언급한 점은 주목된다. 지난해 시정연설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당시 시정연설에서 ‘한국’이란 단어가 딱 한 차례 등장한 건 북한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밝힌 대목에서였다. 이를 두고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초계기 위협비행·레이더 조사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의도적인 ‘한국 무시’ 전략을 쓰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 바 있다.
반면 이날 시정연설에선 “동북아시아의 안보환경이 엄중함을 더하는 가운데 근린제국(가까운 여러 나라)과의 외교는 극히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중국이나 러시아보다 먼저 한국을 거론했다. 지난해 12월 1년3개월 만에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악화된 양국 관계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에 대해 “기본적인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나라”라고 지칭한 표현은 6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아베 총리는 2012년 말 재집권 이후 시정연설을 통해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계속 낮추는 표현을 사용했다. 2014년까지는 이전 정부들처럼 한국을 “기본적인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표현했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갈등이 심화된 뒤인 2015년엔 ‘기본적 가치’를 제외한 채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고만 했다. 북한의 도발이 이어진 2016년과 2017년엔 한·일 군사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번 시정연설에서 6년 전 표현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다만 ‘원래’라는 단어를 붙임으로써 ‘조건부’임을 명확히했다. 한국 정부가 국가와 국가의 약속을 지키는 한에서 ‘원래’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한·일 관계 현안에 대해 한 치도 물러설 수 없음을 강조한 것으로도 보인다.
아베 총리는 또 시정연설에서 “(2002년) 북·일 평양선언에 기초해 북한과 여러 문제를 해결해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정상화를 목표로 하겠다”면서 “가장 중요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의 해결을 위해 조건 없이 나 자신이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마주할 결의”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의연하게 행동해 나간다는 방침은 확고히 관철해 나가겠다”면서 “미국,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긴밀히 연대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는 또 “이번 봄부터 항공자위대에 우주작전대를 창설하는데다 전자파, 사이버라는 새 영역에서의 우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 능력과 체제를 발본적으로 강화하고 있다”면서 군비 강화에 의욕을 드러냈다. ‘전쟁가능한 국가’로 가기 위한 개헌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대를 맞은 지금이야말로 미래를 응시하고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국회 헌법심사회에서 함께 그 책임을 완수하자”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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