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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간사이 2011~2012

나오시마

※최근에는 한국에도 꽤 많이 알려진 나오시마. 우연히 나오시마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5년 전 갔던 나오시마 여행이 생각나 그때 끄적였던 글을 찾아봤다. 


0.
해가 바뀐 지난 3~5일 나오시마로 제법 먼 가족여행-어쩌면 일본에서의 마지막이 될 지 모를-을 다녀왔다. 

나오시마(直島).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섬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곳의 부드럽고 따뜻한 풍광이 마음 속을 갖가지 색의 추억으로 수놓게 됐다.    

한겨울에 섬을 찾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초목의 화사함이나 태양의 강렬함은 사라지고, 몸을 잔뜩 움츠리게 하는 거센 바람만이 몰아치는 스산한 풍경이 연상되니 말이다. 

하지만 나오시마에서의 3일간은 훈훈하고 즐거웠다. 
하늘은 더없이 푸르렀고, 날씨는 온화하고 포근해 가족이 함께 손잡고 걸어다니기에 적당했다.  

나오시마는 천천히 산책하기에 좋은 자그마한 섬이었다. 
마을은 정갈했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 잠겨 있었다. 
저 멀리 세토대교가 희미하게 보이는 세토내해(瀬戸内海)의 풍경은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도시의 떠들썩함에서 벗어나 자연과 예술, 인간의 삶과 역사의 결을 느낄 수 있었다. 
신사나 절 같은 전통건축물이나 빌딩숲이 아닌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색다른 느낌의 일본을 맛볼 수 있었다.  

나오시마는 자연과 문화, 환경이 조화를 이룬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산업폐기물로 몸살을 앓고 쇠락해가던 마을은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의 섬으로 탈바꿈했다.  

현대미술 작품들이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축물들과 만나 독특한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미술작품들은 미술관 안뿐 아니라 바닷가와 수풀에도 산재해 있어 이들과 뜻하지 않게 조우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나오시마의 오래된 골목길 구석구석에도 낡은 집을 활용한 예술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저만의 빛깔을 발하는 자그마한 가게들과 아기자기한 오브제들도 숨어 있었다. 
미술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도 자연과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진 나오시마의 풍광을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할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우리 가족은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아이와 함께 '미로에서 살아남기', '골목길에서 살아남기', '천막에서 살아남기' 놀이를 하며 마을 곳곳을 돌아다녔다. 
나오시마의 상징인 빨강 호박과 노랑 호박 앞에서 즐겁게 뛰어놀았고, 예술작품이 된 대중목욕탕 욕조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바다를 바로 마주한 숙소에서 밤하늘의 별을 세기도 했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기도 했다. 

나오시마에서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0-1.

나오시마를 알게 된 건 우연이다. 

간사이 지방을 벗어난 곳을 둘러볼 요량으로 시코쿠(四国,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4개의 주요 섬 중 가장 작은 섬)의 가가와(香川, 사누키 우동이 유명한)나 도쿠시마(島, 봉오도리 춤으로 유명한) 지역 정보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나오시마라는 이름을 만나게 됐다. 


알고 보니 나오시마는 '예술의 섬', '섬 전체가 미술관' '안도 다다오의 섬'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무엇보다 나오시마에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스토리'가 있었다. 

나오시마는 오카야마(岡山)현과 시코쿠의 가가와현 사이 세토내해(瀬戸内海)에 떠있는 섬이다. 
가가와현의 다카마츠시(高松市)에서는 북으로 13km、오카야마현 다마노시(玉野市)에서는 남쪽으로 약 3km 떨어져 있는데 가가와현에 속한다.
동서 2km, 남북 5km, 둘레 16킬로미터, 인구가 3500명 정도 되는 자그마한 섬이다. 
화강암이 많은 구릉성 지대로 평지가 적고 수수한 풍경이 대부분이지만, 남쪽의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흰 모래사장과 푸른 소나무가 아름답게 펼져져 있기도 하다.  

1156년 호켄(保元)의 난 때 패한 스토쿠상왕(崇德上皇)이 사누키 지역으로 유배되던 도중 이 섬에 들렀을 때 마을 사람들의 순진소박함-일본어로 스나오(
素直)라고 한다-에 감복해 나오시마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나오시마는 크게 
선창장이 있는 미야노우라(宮ノ浦)、전국시대의 성밑마을을 원형으로 하는 혼무라(本村)、옛부터 어항이었던 츠무우라(積浦)라는 3개의 마을이 있다. 
북쪽에는 미츠비시(三菱) 머티리얼 제련소가, 섬 중앙은 유,초,중학교가 있는 분쿄구(文教区)가 있다. 또 세토내해 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는 남부 지역에는 미술관과 숙박시설이 혼합된 베네세 아트 사이트가 자리잡고 있다. 
주요 산업으로는 미츠비시 머티리얼 관련 산업과 방어와 김 양식업 등이 있다. 또 데시마(豊島) 산업폐기물의 중간처리도 이뤄지고 있다. 


에도시대에는 막부의 직할지인 덴료(天領)가 돼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해운업이나 제염소의 섬으로 번성했다. 
현대에 들어서는 1917년 미츠비시 광업(현 미츠비시 머티리얼)의 제련소가 설립돼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관련산업의 성장이 한계에 달하면서 마을은 활기를 잃기 시작했고, 산업폐기물로 인한 환경 오염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    

이 같은 마을이 재탄생하게 된 계기가 현재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라고 불리는 프로젝트다. 
교육관련 그룹인 후쿠타케쇼텐(福武書店)、현재의 베네세그룹과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만나 1989년 나오시마에 국제캠프장을 열고, 3년 뒤 체류형 미술관인 베네세하우스를, 2006년 지추미술관, 2010년 이우환 미술관을 설립하는 등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도 자연과 문화와 환경이 조화된 마을 만들기에 팔을 걷어부쳤다. 

나오시마는 이제 자연과 예술이 서로 공명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스토리에 끌린 우리 가족은 시코쿠 대신 나오시마행을 계획했다. 
일단 사람들이 덜 몰리는 시기인 연말연시 연휴가 끝나는 때를 맞춰 계획-이라고 해봤자 열차시간표 확인과 숙소 예약 정도지만-을 짰다. 

그리고 열차를 여러 번 갈아타는, 이제는 진이 박힌 여행을 떠났다.



1. 
오카야마 우노항을 출발한 배를 맞이하는 것은 거대한 빨강 호박이다.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의 2006년작인 <빨강 호박>. 나오시마의 랜드마크다.  



무당벌레를 연상시키는 검정 '땡땡이' 무늬. 
내부로도 들어갈 수 있는데, 창문 같은 구멍들이 뚫려 있다. 
이 구멍으로 항구와 바다의 풍경이 보는 것도 색다르다.  
아이와 아내는 구멍으로 머리를 내밀면서 즐거워 한다. 


 


바로 옆에는 나오시마의 현관인 여객터미널이 있다. 
전면이 통유리로 돼 있는 깔끔한 현대식 건물이다. 
우미노에키(駅) 나오시마, 바다의 역. 꽤 낭만적인 이름이다.    



1-1.

100엔짜리 마을버스인 '스나오군'-'솔직군'쯤 되려나-을 타고 섬 남부의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로 향했다.  
버스는 우리가 묵게 된 쓰쓰지소(つつじ荘, 철쭉장)가 종점이다.  
이곳에서 베네세 아트 사이트를 순환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야 하는데, 15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시간 간격을 둔 건 아마 이곳 바닷가에 나오시마의 또다른 '호박'을 감상할 시간을 마련해주려는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쿠사마 야요이의 또다른 작품 <호박>. 
이번에는 노란색. 
빨강 호박보다는 좀 작다. 
검정 땡땡이 무늬가 규칙적인 줄무늬를 이루고 있고, 색깔도 더 선명하다.  
남쪽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를 마주하고 홀로 서있는 모습이 강렬하다.  
이 노란 호박은 숙소 옆에 있었던 탓에 줄곧 보게 됐는데 볼 때마다 색다른 느낌을 주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노란 호박을 경계로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 지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베네세 아트 사이트는 나오시마를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섬으로 재탄생시킨 진원지다. 
 
1985년 후쿠타케쇼텐(福武書店、현재의 베네세그룹)의 창업사장 후쿠다케 데쓰히코(福武哲彦)와 나오시마촌장 미야케 지카쓰쿠(三宅親連)는 세계의 아이들이 모일 문화교육의 장을 만들기로 약속했다. 
이후 후쿠타케 소이치로(福武總一朗) 회장이 선친의 유지를 이어 1989년 안도 다다오의 감수를 받은 나오시마 국제캠핑장을 개장했다. 
소이치로 회장은 안도를 만나면서 당초 계획을 바꿔 예술작품으로 섬을 메우기로 했다. 1
992년 현대미술 전시공간과 호텔객실을 갖춘 베네세하우스가 개관했고, 2004년 지추미술관이, 2010년에는 이우환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또 1998년부터 사이트 스페시픽(site specific, 특정공간에의 맞춤식 예술) 작업으로 혼무라지구에 <이에(家, 집)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는 나오시마를 넘어, 인근의 데시마, 이누지마를 무대로 전개되고 있는 예술 프로젝트다. 


1-2.

셔틀버스를 타고 베네세 아트 사이트 지역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지추미술관부터 찾았다.

지추(地中)미술관은 전혀 새로운 개념의 미술관이다. 
이름처럼 건물 대부분이 언덕의 지하에 매설돼 있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나오시마의 아름다운 경관을 헤치지 않기 위해서다. 관람자는 지상의 입구에서부터 계단(혹은 엘리베이터)을 따라 지하 3층까지 내려가게 된다.  

미술관은 지하에 있지만 자연광이 비쳐 내려오도록 해 작품이나 공간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도록 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한다는 미술관은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 9점만이 전시돼있다. 

셔틀버스가 미술관 티켓센터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티켓을 구입해 옆쪽으로 난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간다. 
오르막길 옆에는 <지추의 정원(地中庭)>이 있다. 
클로드 모네가 조경한 '지베르니의 정원'에 심어져 있었다는 식물을 중심으로 200여종의 초목으로 구성된 정원이다. 수련과 버드나무, 아이리스 등 모네가 만년에 즐겨 그렸던 자연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한겨울이었던 탓에 꽃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정갈한 느낌의 정원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오르막길 위 접수처에서 티켓을 제시하고 또 오르막길을 조금 올라가면 미술관 입구다.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서 있고, 이곳에 난 어두컴컴한 통로를 통해 들어가게 돼 있다
여기서부터는 사진촬영 금지. 베네세 아트 사이트의 건축물 실내는 모두 사진촬영 금지다.   



지추미술관은 예술체험이 별로 없는 나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 줬다.   
안도 다다오는 인공물인 콘크리트와 자연물인 빛을 조화시키고, 공간의 열림과 닫힘을 절묘하게 연출했다.  
미로같은 복도와 계단을 돌고 돌아-아이는 "미로에서 살아남기"라며 오히려 즐거워 했다- 우선 지하 2층의 클로드 모네 전시실로 들어갔다. 


흰 슬리퍼로 갈아 신고 어두운 복도로 들어가자 갑자기 전면에 환한 빛의 세계가 펼쳐졌다. 
천정에서 부드럽게 쏟아지는 빛이 1.5㎤ 정도 크기의 타일이 하얗게 깔린 바닥과 흰색 벽에 반사되고 있었다. 
맞은 편에 걸린 가로 3m, 세로 2m짜리 대형 액자에선 안개가 깔린 연못에 핀 수련의 모습이 떠올랐다. 

모네가 만년에 제작한 수련 시리즈 5점이 정면과 좌우 측면, 후면 좌우에 간결하게 배치돼어 있었다. 전시실의 크기, 디자인, 소재는 모네의 그림과 공간을 일체화시키기 위해 엄선됐다고 한다.  

그 다음은 제임스 터렐의 전시실.  
미국의 현대미술가 터렐은 빛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제시하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이 작가의 작품은 다음날 방문한 <이에 프로젝트>에도 하나 있는데,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됐다.   
 
<Open Field>라는 이름이 붙은 전시 공간은 순서를 기다려 8명씩만 들어가게 돼 있었다. 
검은 계단을 밟고 올라가 장방형으로 파인 푸르스름한 공간으로 들어갔다. 
어디까지가 빈 공간이고 어디가 벽인지, 공간감각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뒤쪽에서 어스름하게 빛나는 네온등만으로 이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바로 옆 공간은 터렐의 또 다른 작품 <Open Sky>.  
정방형 공간의 벽쪽에는 석조 벤치가 이어져 있고, 위쪽은 뚫어놓았다. 
벤치에 비스듬히 누워 정사각형으로 틀잡힌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기분이 상쾌하다.  
조금 전 봤던 <open field>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이곳에서는 일몰시에 진행되는 나이트 프로그램도 있다고 한다. 

벤치에 한가롭게 앉아 있으니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가 고고하게 들려 왔다. 
지추미술관은 이런 자연의 소리도 한 요소로 끌어들여 그야말로 자연과 예술의 공명을 이뤄낸 게 아닐까 싶었다. 
미술관 안내 팜플렛에도 "세토내해의 조용한 자연이 발하는 리듬과 그 장소에 가장 알맞은 예술과 공간 속에 인간의 지성과 감성의 자극을 체험하는 장소"라고 적혀 있었다. 

지하 3층으로 내려가면 미국 현대미술가 월터 드 마리아의 전시실이다.  
작품명 <Time/Timeless/No Time>.   
석회색 계단의 중심에 직경 2.2m의 검정색 구체가 놓여 있었다. 
벽면을 따라서 27개의 금박을 입힌 나무 기둥을 3개씩 배치했다. 
천정에서는 햇빛이 흘러 들어왔다.
마치 고대의 신전이나 SF영화에 나오는 세계 같았다.   

다시 계단을 돌고 돌아, 어두운 통로를 지나 미술관을 빠져 나왔다. 
겨울의 따스한 햇살이 아지랑이처럼 쏟아졌다. 
어느날 우연히 발견한 지하통로를 통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돌아온 느낌이었다.  



1-3. 
지추미술관을 반환점으로 돌아가는 셔틀버스의 다음 정착지는 이우환 미술관.  
이우환은 나오시마를 찾기 전까지는 이름만 어렴풋이 알고 있던 작가다. 
우리나라에도 없는 그의 개인 미술관이 일본의 한 섬에 있다는 게 한편으론 놀라웠다. 

미술관은 계곡처럼 움품 파인 부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역시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특유의 콘크리트 건물이다. 
전시실은 지추미술관처럼 통로를 돌고 돌아들어가야 한다.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도 이런 식의 구조이다. 
그러고 보니 울타리나 석벽을 세워 곧바로 건물 입구로 들어가지 않는 방식의 진입로는 교토의 긴카쿠지(銀閣寺)에도 있었다.  


전시실까지는 들어가지 않고 미술관 앞마당에서 놀았다.    
이우환 미술관은 야외 풍경도 작품의 하나 같았다. 
잔디밭에는 바위와 육각형 콘크리트 봉이 하늘 높이 뻗어있다. 
그 옆에는 바위 두 개와 철판이 말없이 세워져 있었다.  
잔디밭은 해안가까지 길게 이어지고, 바다가 보이는 탁 트인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도 예술과 자연을 하나로 어우르려는 의도가 읽혀졌다. 



미술관 셔틀버스 정류장 앞에 연못이 있었다. 
연못 저쪽으로는 자그마한 불상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오자와 쓰요시의 <슬랙 붓다 88>이라는 작품이다. 
이 불상들은 산업폐기물을 소각처리하고 최종적으로 남은 찌꺼기(slag)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1-4.
이우환 미술관에서 베네세 하우스까지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베네세 하우스는 자연, 건축, 예술의 공생을 컨셉트로, 미술관과 호텔이 일체화된 시설이다. 뮤지엄, 오벌, 파크, 비치의 숙박동 4동과 테라스 레스토랑, 숍 등으로 구성돼 있다.  
현대예술 미술관을 갖춘 뮤지엄으로 올라가는 길은 언덕인데, 언덕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시원하고 길 맞은편에도 바다를 조망할 수 있도록 벤치가 하나 놓여 있었다.  

 


미술관은 지하1층, 지상 2층 구조인데 통 유리를 많이 배치해 바깥을 향해 열린 느낌을 준다. 
옥외에도 작품들이 설치 되어 있어 유리문을 밀고 나가 작품을 볼 수도 있다. 
2층 카페에는 백남준의 <금붕어를 위한 소나티네>라는 작품이 놓여 있었다.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는 낡은 텔레비전 모양인데 안에 금붕어가 있다. 

사실 뮤지엄을 비롯해 베네세 아트 사이트에는 옥외 작품이 인상적인 게 더 많았다. 
무심코 산책하다가 이들 작품을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1-5.
뮤지엄에서 나올 때 갑자기 강한 바닷바람이 불었다. 
아이와 함께 모자를 뒤집어 쓰고 이번엔 '바람에서 살아남기' 놀이를 하면서 길을 따라 내려갔다.  
길가 옆 잔디밭에는 마름모꼴 모양의 작품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밑으로는 선착장이 보였는데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레스토랑과 숍이 있는 베네세 하우스 비치쪽으로 갔다. 
지나가던 셔틀버스가 타겠냐고 멈췄는데, 해변이 바로 코 앞이라 그냥 걸어갔다.  



비치 앞 잔디밭에도 형형색색의 귀여운 작품이 놓여 있었다.
카럴 어펄의 <개구리와 고양이>, 니키 드 상팔의 <의자>……. 마치 즐거운 놀이터에 온 것 같았다. 
이들 작품 앞에서 재미난 포즈를 취하면서 놀다가 노란 호박이 혼자 서 있는 바닷가를 따라 숙소인 쓰쓰지소로 돌아왔다. 




1-6. 
쓰쓰지소는 나오시마 남부의 해변가에 고향 창생사업(創生事業)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몽골식 천막인 파오와 트레일러, 일본식 방 등 전체 13동으로 이뤄져 있는 캠프장 같은 숙박시설이다.  

첫날은 파오로, 둘째날은 트레일러로 예약했다. 
파오 안은 의외로 넓었다. 
안에는 간이 침대 4개와 탁자와 의자, 스토브 등이 갖춰져 있었다.   
아이는 파오가 신기한지, 간이 침대 위에서 붕붕 뛰며 '예~, 예~'하며 즐거워했다. 
아내도 "이런 곳에서도 다 자 보네"라고 했다.   

파오를 나오면 바로 앞이 바다다. 
저무는 해 뒤로 멀리 세토내해의 섬들과 세토대교가 희미하게 보였다. 
해변으로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저녁을 먹고 아이와 함께 쓰쓰지소 사무실에서 대여한 천체망원경으로 별자리 찾기를 했다.  
예전의 어렴풋한 기억으로 천체망원경을 조작해 보려 했는데 전혀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맨눈으로 별자리를 찾는 게 나을 정도로 밤하늘은 어두웠고 별은 선명했다. 
아이는 오리온 자리와 카시오페이아 자리를 찾은 게 마냥 좋은 모양이다. 



색다른 체험이었다. 
별빛이 가득한 바닷가 옆 파오 속에서 자다니 말이다.  
우리 가족은 바람과 파도의 소리를 들으며, 꿈나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