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찬의 첫 산문집. 대학 시절 그의 소설집 <완전한 영혼>을 괴롭게 읽었던 기억-전날 읽었던 책 내용도 기억이 안 나는 요즘을 생각하면 꽤나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이 지금도 난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 믿음, 인간의 본성. 다른 소설에서 접하지 못했던 소재와 관념적-정희진은 이 ‘관념적’이라는 세평에 이의를 제기하지만-인 전개, 그래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완전한 영혼>을 읽은 뒤 정찬 소설을 읽은 기억은 없으니 이후 30년 동안 정찬의 궤적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번 산문집은 여러 매체에 투고한 글들을 중심으로 엮은 것인데, 다양한 현실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제목처럼 슬픔과 공감, 혐오와 배제의 문제, 그리고 분단 문제에 대한 사고들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언어 속에 산다. 언어 속에 존재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언어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때문이다. (중략) 무한의 공간을 어지롭게 떠도는 언어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무참해질 때가 많다. 진실을 표현한다는 언어들이 넘쳐흐르지만 정작 진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고 훼손할 뿐 아니라 갈기갈기찢기까지 한다. 간독 시대의 장인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는 “고통에는 중립이 없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도 이상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저는 공동체의 건강상태를 가늠하는 여러 가지 척도 가운데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침몰 이후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절망의 풍경도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텅 빈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아버렸습니다. 그 황폐한 풍경 역시 쉽게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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