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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간사이 2011~2012

천년 전 일본인들이 꿈꾸던 극락정토...교토 우지의 뵤도인

일전에 파나소닉 시오도메 뮤지엄에 갔다가 집어온 팜플렛을 뒤적거리다보니 익숙한 사진이 있었다. 

교토 남부 우지(宇治)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뵤도인(平等院)의 뮤지엄 호쇼칸(鳳翔館). 

7년 전 별 생각없이 들렀다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운중공양보살상(雲中供養菩薩像)’들의 이미지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강렬하게 떠올랐다. 

팜플렛에 따르면 호쇼칸은 2001년 건설됐는데, 파나소닉에서 2015년 리뉴얼 작업에 참가한 모양이다. 

당시 조명설비를 LED로 교체했는데, 컨셉트가 뵤도인이 구현한 ‘서방극락정토’를 표현하는 것이었다고.  

호쇼칸에는 일본 국보인 범종과 봉황, 운중공양보살상이 전시돼 있다. 파나소닉은 조명기술을 통해 마치 주위에서 공중으로 떠오르는 듯한 박력감을 실현, 지금까지는 보기 힘들었던 세부 표정까지 표현했다고 한다.

흠, LED화하기 전에도 조명발이었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7년 전 추억을 끄집어내본다.


1. 
 외사촌의 차를 타고 교토 남부의 우지(宇治)를 둘러봤다
우지에서 강을 거슬러올라 시가현 오츠시쪽으로 넘어가 일본 최대 호수인 비와(琵琶)호 주변도 잠깐 들렀다

우지는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조그마한 도시다
이 조그마한 도시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가 10엔짜리 동전의 모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뵤도인(平等院). 
우지는 우지강 주변의 유려한 풍경, 그리고 나라와 교토비와호를 잇는 중간지점이라는 입지 조건 때문에 헤이안 시대부터 귀족의 별장지로 번성했다. 

뵤도인은 헤이안 시대 귀족들이 꿈꾸던 극락정토의 모습을 구현한 곳이다
1052년 당시 최고 권력가였던 후지와라 미치나가(藤原賴通) 여름별장을 정토종 사찰로 개조한 곳으로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헤이안 시대 귀족건축의 전형이라고 한다.  

또 하나가 차(). 
우지는 중국에서 들어온 차를 가장 먼저 재배한 곳으로, 지금까지도 차가 출하되는 봄에는 전국에서 손님들이 몰려들 정도로 차 산업이 번창하다.   
뵤도인으로 가는 참배로 양 옆으로는 차 가게들이 즐비하고, 녹차 아이스크림이나 녹차 젤리, 녹차 소바 등을 파는 가게들도 많다.  

2. 
우지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 우지강이다.  
케이한(京阪전철 우지역 앞과 뵤도인 참배로를 잇는 우지교에서 바라보는 우지강의 풍광이 시원하다
태풍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초록색 물살이 기운차게 넘실거리고 있었다

폭이 그리 넓지 않은 강을 따라서는 가로수가 늘어서 있다
상류쪽에는 모래가 퇴적돼 생긴 조그마한 섬과, 섬을 잇는 베이지색과 붉은색 다리가 각각 걸려 있었다.     
섬에는 13층 석탑 등이 자리한 우지공원이 있다고 하는데이날은 물살이 거센 탓인지 섬으로 건너가는 다리로의 출입이 금지돼 있었다.



우지가 유명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일본의 고대소설이자 일본인의 정서를 대표한다는 <겐지 모노가타리(語)>의 무대라는 점이다.  
<겐지 모노가타리>의 마지막 10권에서 겐지의 아들 카오루와 그의 친구 니오노미야, 그리고 우키후네의 삼각 관계(?)가 펼쳐지는 곳이 우지강 주변이라고 한다.   
우지시는 겐지모노가타리 뮤지엄을 개관하는 등 <겐지 모노가타리>를 테마로 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뵤도인쪽 우지교 초입에는 <겐지 모노가타리>의 작가 무라사키 시키부의 동상이 서 있고, 반대쪽 강가에는 우키후네와 니오노미야의 동상이 서 있다. 


3. 
아기자기한 차 가게들이 늘어선 참배도를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뵤도인이다. 
입구를 지나면 바로 뵤도인의 측면이 보이고, 왼쪽으로 커다란 등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는 등나무 시렁이 눈에 띈다. 
등(藤)나무는 뵤도인을 건립한 후지와라(藤原) 가문을 상징하는 꽃이라고 한다. 
그 옆으로는 가마쿠라시대에 지어졌다는 관음당이 자리하고 있다.  


등나무시렁 바로 앞에는 연못 위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있는 뵤도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소 색깔이 바랜 낡은 목조 건물이지만, 특별히 훼손되거나 소실된 곳 없이 1000년의 세월을 버텨온 걸 생각하면 놀랍다. 

뵤도인은 중당, 좌우 익랑, 미당 등 4채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중당인 호오도(鳳凰堂,봉황당)는 아미타불을 봉안한 건물이라 원래 이름은 아미타당이다. 
좌우에 봉황의 날개처럼 펼쳐진 건물이 붙어 있어서 봉황당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호오도 용마루에는 봉황 장식이 붙어 있기도 하다.  
뵤도인 앞 연못은 아미타불의 아(阿)자 모양으로 만들어져 아지이케(阿池)라 불린다.
 




불교에선 석가모니가 돌아가신 뒤 2000년이 지나면 말법시대가 온다는 믿음이 있는데, 당시 계산법에 따르면 봉황당이 건축된 해가 말법 원년에 해당되는 때였다.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서방극락에 계신 아미타부처에게서 구원을 찾고자 했다. 
봉황당은 바로 그 아미타부처가 있는 극락정토의 궁전을 재현하고자 한 건물이다.  
차경 양식의 정원을 꾸미고, 연못의 중앙섬에 봉황당을 배치해 극락의 연못에 떠있는 궁전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아울러 봉황당 안에 본존아미타여래좌상을 배치하고, 주변에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는 운중공양보살상 52구, 그리고 문과 벽에 9가지 방법으로 아미타보살을 맞이하는 구품내영도(九品来迎図) 등을 그려 극락정토를 나타내고자 했다.   
때문에 12세기 역사서 <부상략기>에는 "극락을 알고 싶다면 뵤도인을 보라"라고 기록돼 있을 정도다.  


본존아미타여래좌상 ⓒ뵤도인 홈페이지 사진

봉황당 안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2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봉황당에 있던 유물을 주로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인 호쇼칸(鳳翔館)을 보는 데 만족해야 했다. 
호쇼칸은 현대적인 건축물인데다, 알차고 아름다운 전시 내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일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범종인데, 헤이안시대를 대표하는 3대 종의 하나라고 한다.  
범종 표면에 새겨진 천녀의 모습에선 한국 범종과의 연관성이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봉황당 용마루에 붙어 있던 금동봉황 1쌍과 구품왕생도 복원도 등을 지나면 가장 흥미로운 전시물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운중공양보살상(木造雲中供養菩薩像)로, 봉황당의 본존아미타여래좌상 뒤 벽면에 있던 52구 가운데 26구를 전시하고 있다. 
이 보살상들은 50센티미터 전후의 작은 목조상들인데, 모두 구름을 타고 있고 북 등 각종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면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모습으로 조각돼 있다. 
특히 전시실 한 면을 메우고 있는 10여구의 보살상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당시 일본인들이 상상했던 극락의 음악소리가 들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뵤도인 범종. 원래는 봉황당 뒷쪽 종루에 걸려있던 것이다. ⓒ뵤도인 홈페이지 사진 

봉황당 용마루에 장식돼있던 봉황상 ⓒ뵤도인 홈페이지 사진 


운중공양보살상  ⓒ뵤도인 홈페이지 사진  

4. 
뵤도인을 나와 다시 우지바시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우지신사가 나온다. 
이곳은 우지가미신사의 말사격이다. 

우지신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우지가미신사의 주황색 도리이가 나온다
우지가미 신사는 생각보다 아담한데다 사람들도 많이 없어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우지가미 신사의 본전은 헤이안시대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현존하는 신사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라고 한다. 
이 신사도 뵤도인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다시 가로수가 심어진 돌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겐지 모노가타리 박물관에 다다른다. 
박물관에는 <겐지 모노가타리>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방들과 미니어쳐 등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겐지 모노가타리>를 읽지 않은 터라 외관만 보고 발길을 돌렸다.  


5.
점심 때가 훌쩍 지나서 식사할 곳을 찾았다. 
인터넷 여행사이트나 블로그 등에서 추천한 참배로 근처의 녹차 소바 가게들 대신 우지가미신사 가는 길에 있던 소바 가게를 골랐다. 
일본인들이 줄줄이 서있다는 단순한 이유였는데 덕분에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나야 미각을 읽은 장금이의 혀를 가진 터라 잘 모르겠는데 아내나 처 외사촌은 맛있단다. 
손으로 직접 뽑아서 만들어주는 소바는 처음 씹었을 때는 딱딱한 느낌이 날 정도로 표면이 거칠었는데, 그 때문에 오히려 불지 않고 졸깃졸깃하고 담백한 메밀 맛이 난다고 했다. 



후식으로는 우지교 바로 앞에 있는 쯔엔(圓)에서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이곳은 350년 넘게 영업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녹차와 함께 녹차 경단이나 센베이 같은 것도 팔고 있었다. 
가게 앞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다보니 에도시대에 뵤도인을 참배하러 온 사람들도 우지강이 보이는 이곳에 앉아 녹차 한 잔을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을 거라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아이는 녹차아이스크림이 맛있다고 아이스크림 모형을 꼭 껴앉고 포즈를 취했다.


우지에서 만난 고양이는 녹차 가게 앞 선반에 배를 깔고 누워 느긋하게 초가을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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