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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차별과 배제의 언어

   책상 한편에 얇은 책자 하나가 놓여 있다. 지난 7월 편집국에서 펴낸 스타일북(기사작성 매뉴얼)이다. 책자는 6가지 원칙 아래 구체적인 기사작성 지침을 담고 있다.
 그 첫째 원칙이 ‘사회적 다양성 존중’이다. 다름을 차별·혐오하는 표현을 지양하고,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공존을 추구하고, 강자보다 약자의 관점에 가중치를 둔다는 것이다. 예컨대 “부족함이나 열등함을 표현하기 위해 장애를 이용하는 관용구·속담은 쓰지 않는다”라고 정하고, ‘절름발이 정책’ ‘장애를 앓는’ 등 쓰지 말아야 할 표현과 대체 표현을 정리했다. 또 “성차별적이거나 잘못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고 하면서 ‘양성평등’은 ‘성평등’, ‘미혼모’는 ‘비혼모’ 등으로 바꾸도록 했다.
 처음 책자를 훑어볼 때 ‘아, 이것도’ 싶은 것들이 적지 않았다. 필자가 남성·이성애자·비장애인, 이른바 한국 사회의 ‘주류’에 속해 차별·혐오·배제의 언어에 민감도가 떨어지는 탓인지 모른다. 책자는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라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언론사 내부 애기까지 굳이 꺼낸 건 ‘선량한 차별주의자’라고 하기에 도를 넘어선 차별과 배제의 표현이 곳곳에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가장 뜨거운 쟁점인 부동산 문제만 봐도 그렇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집을 산다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이 일상어가 된 와중에 ‘빌거(빌라거지)’ ‘호거(호텔거지)’ 같은 말이 온·오프라인 공간을 떠돈다. “거지 같은 게”라는 표현처럼 ‘거지’는 사람을 욕하는 말이다. ‘호텔거지’는 호텔 리모델링을 통한 청년 1인 가구 임대주택 공급정책을 조롱하는 말이다. 과거 논란이 된 ‘전거(전세거지)’ ‘휴거(LH 임대주택 휴먼시아 거지)’의 확장판이다.
 이런 표현은 부동산 문제를 상징하는 차원을 넘어, 빌라 거주자나 임차인 등 특정집단을 낙인찍고, 이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부추긴다. 조롱과 비난을 쏟아내는 이들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게는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나온 40대 남성은 “아이가 ‘빌거’라는 말을 듣지 않게 하기 위해 영끌해서 아파트를 샀다”고 했다.
 이런 언어 표현과 습관이 한국 사회의 어떤 징후를 드러내는 건 아닐까. 어떤 사람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칸막이를 쳐 밀어내고, 서열을 매기려 하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빌라 사는 사람을 멸시하고, 아파트 30평에 사는 사람은 20평 사는 사람을 무시한다. 그런데 그 무시와 차별의 근거가 되는 ‘능력주의’는 과연 온당한가.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쓰는 언어 표현에서 공존보다 배제가, 공감보다 차별이 두드러진다. 공존과 공감이 건강한 공동체의 기반이라고 한다면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언론과 정치권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먼 옛날 대나무 조각에 글을 쓸 때 잘못 쓰면 칼로 파내고 다시 썼다. 이 때문에 한 자 한 자 새기듯 글을 썼을 것이다.
 언어가 넘쳐흐르는 시대다. 타인에게 상처주고, 사회를 분단시키는 차별과 배제의 언어들을 우리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선량을 가장한 무신경이야말로 차별과 배제를 키우는 토양일지 모른다.